등록 : 2008.07.10 20:17
수정 : 2008.07.1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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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수 대기업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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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프리즘
“종업원이 아무리 많아도 기업실적은 결국 최고경영자의 자질에 좌우된다.” 20세기 경영학의 대가인 피터 드러커 교수의 말이다. 최고경영자(CEO)는 경영환경의 변화를 통찰하고 이에 대응하는 기업역량의 중추다. 이명박 대통령은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최고경영자를 자처했다. 그러나 4개월여 동안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못해 참담하다. 7·4·7(매년 7%씩 성장해 10년 뒤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위 경제강국 진입)로 상징되는 ‘엠비(MB)노믹스’의 폐기가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새 정부의 한 장관은 사석에서 “지난해부터 이미 위험신호가 왔는데, 인수위 때까지도 그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한 사람이 없었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대외환경 탓만 한다. 한술 더 떠 촛불시위 탓에 외국인 투자와 관광객이 줄고 물가가 치솟는다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책임회피는 진정한 리더의 모습이 아니다. 최근 대통령과 여당은 한국 경제가 위기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미국의 한 대학교수는 이를 보고 “정말 정신없는 짓”이라고 말한다. 경제는 실물이지만 경제주체들의 심리 또한 중요하다. 제대로 된 국가지도자라면 위기라는 말을 섣불리 하지 않는다. 경제부처의 한 간부는 지난 7일 개각이 있은 뒤 “(강만수) 장관의 책임을 (최중경) 차관이 대신 지는 것은 듣도 보도 못한 일”이라고 혀를 찼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당국자의 리더십과 신뢰가 중요한데 시장 신뢰를 잃은 장관을 유임시키다니….” 재계의 한 인사는 굳은 표정을 지었다. 국민들 마음속에는 정권이 들어선 지 4개월이 아니라 4년이나 지난 것처럼 피로가 쌓였다.
엠비노믹스의 실패는 필연이었는지 모른다. 무엇보다 전략적 오류가 치명적이다. 대통령은 경제 살리기를 위해 투자와 고용 확대를 내걸었다. 핵심 전략은 친재벌과 규제완화였다. 하지만 이것은 이제는 작동하지 않는 과거의 패러다임일 뿐이다. 지금은 대기업이 아무리 수출을 많이 하고 실적이 좋아도, 그 성과가 중소기업과 국민들에게 자연스럽게 흘러가지 않는다. 두번째로 일관된 원칙이 없다. 말로는 친시장이지만, 행동은 딴판이다. 고환율 정책을 뒤늦게 포기한 뒤 환율을 낮추겠다며 매일 수십억달러를 쏟아붓지만 불안감은 마찬가지다. “경상적자 확대 등 시장여건이 전과 달라서, 정부가 인위적으로 환율을 끌어내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이명박 대통령과 강만수 장관은 연어도 아니면서 왜 자꾸 시장 흐름에 반대로 가려는 걸까?
기업의 역사를 보면 위기 속에서 오히려 핵심 역량을 구축해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사례가 많다. 이런 기업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최고경영자의 유연성이다. 일본의 도요타는 대표적인 사례다. 도요타는 1950년대 최악의 노사갈등에서 비롯한 도산 위기를 딛고 노사관계가 가장 탄탄한 기업으로 변신한 뒤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기업으로 성장했다. 미국의 경영학자 짐 콜린스도 위대한 기업의 첫째 조건으로 겸양과 의지를 함께 지닌 리더를 꼽았다. 최근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오바마 의원의 잇따른 정책변화가 언론에 소개됐다. 미국 정치학자들은 이를 국가 리더를 준비하는 자연스런 시각 재정립 과정으로 설명한다.
이 대통령이 한국 경제를 살리려면 가장 먼저 자신의 실패를 겸허히 인정하는 유연성을 보여야 한다. 그리고 이미 시장 신뢰를 잃은 경제팀을 교체하고 바른 전략과 원칙을 세워야 한다. 반대로 계속 시장과 민심에 맞선다면 경제를 살리는 대통령이 아니라 죽이는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다.
곽정수 대기업 전문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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