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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6.05 19:32 수정 : 2008.06.05 19:32

정태우 편집1팀 기자

한겨레프리즘

지난주말 새벽 경찰의 과잉진압에 항의하는 촛불집회 현장을 지켜봤다.

“여러분의 의견은 충분히 전달되었습니다. 여러분의 행위는 시민들의 불편을 초래할 수 있으니 즉시 해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경찰이 선무 방송을 하자마자 시위대에선 댓글을 달 듯 “우리가 시민이다”는 구호가 터져 나왔다. “여러분들은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을 위반하였으니 현행범으로 사법처리될 수 있습니다”라는 경찰의 최후 통첩엔 곧바로 “집시법이 위헌이다”라는 반박이 이어졌다.

일촉즉발의 긴장감 속에서도 발랄하게 터져 나오는 항의는 거리의 문화가 달라졌음을 실감케 했다. 그러나 세상과 사람과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달라지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정부가 위기에 몰릴 때마다 편들고 나선 빗나간 조언자들. 국민을 참담함과 불편함으로 내몬 보수 언론과 보수 논객, 그리고 뉴라이트 계열의 지식인들이 그들이다.

“미국산 쇠고기 먹으면 광우병 걸린다고 선동한 정치인·학자, 무슨 무슨 운동가, 티브이방송사 고위 간부, 전교조·민주노총 간부들이 값싸다고 뒷구멍에서 몰래 미국산 쇠고기를 먹지 않는지 반드시 눈 뜨고 지켜볼 일이다.” 5월30일 ‘대통령 총리 장관 공무원부터 미국 쇠고기 먹어야’라는 제목으로 실린 <조선일보> 사설이다. 안전한 쇠고기를 바라는 사람들에 대한 뒤틀린 심사가 팽배하다 보니, 그들이 내세워 온 품격은 땅에 떨어졌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는 “나쁜 국민들의 선동과 사기와 폭력에 대해서 법을 엄정하게 집행하지 않는 것만큼 나쁜 행위는 없다”며 공권력 동원을 선동하고 촛불집회 참가자를 나쁜 국민으로 몰아붙인다. 졸속 쇠고기 협상을 한 정부가 아니라 잘못된 협상에 항의하는 국민이 나쁘다는 말이다. 80년 광주항쟁에 참여한 시민들을 도리어 폭도로 몰던 뒤집어씌우기가 떠오른다. ‘국민에게 항복할 필요 없다’는 조씨의 말이 공권력에 닿아서일까. 조씨의 의견이 올려진 다음날 청와대로 향하던 시민들은 쏟아지는 물대포와 군홧발에 치를 떨어야 했다.

“어차피 민심 잃은 판에 외교까지 엉키면 두 가지 모두를 잃을 게 뻔하다.” 송희영 조선일보 논설실장이 5월17일 ‘광우병보다 끔찍한 재앙’이라며 쓴 칼럼이다. 미국과의 관계가 먼저니까 민심은 포기하라는 뜻으로 들린다.

‘(촛불집회로) 법과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위대한 유권자들이 다시 궐기하자. 누가 나라의 주인인가를 보여주자’. 3일 아침 <조선> <동아> <중앙> <한국>에 실린 뉴라이트전국연합과 국민행동본부 의견광고다. 촛불을 든 사람들도 유권자이고 나라의 주인임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무늬만 뉴라이트(새로운 우파), 전혀 새로워진 게 없는 보수진영의 목소리다.

추락하는 국정 운영 지지율에 위기를 느낀 정부와 한나라당은 민심 수습에 부심하고 있다. 왜 이렇게 국민 여론이 악화되었는지 짚어 보는 것이 민심 수습의 첫 단추일 것이다. ‘잘못된 협상’에서 비롯된 최초의 문제는 ‘잘못된 대처’에 의해서 더 악화되었다. 그리고 잘못된 대처 뒤에는 어김없이 빗나간 조언자들이 있다. 잘못된 정책에 대한 경고 기능을 상실한 채 함께 합창해 온 사람들, 정부는 그들과 장단 맞춘 결과가 광범위한 민심 이반임을 직시할 때다.

꺼지지 않는 촛불 뒤에는 쇠고기 재협상과 민주주의를 소망하는 평범한 시민들이 있다. 잘못 끼운 단추는 처음부터 다시 끼워도 늦지 않다. 정부가 지금이라도 진정 국민과 소통하기를 바란다면, 권력의 방패로 나선 조언자들의 그늘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라.

정태우 편집1팀 기자windage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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