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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5.30 14:57 수정 : 2008.05.30 14:57

곽정수 대기업 전문기자

“귀한 손님이 왔는데, 정작 주인이 보이지 않으니 ….” 중국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29일 현대자동차 베이징 공장을 찾았을 때 정몽구(MK) 회장이 안 보이는 걸 두고 나온 말이다. 정확히 말하면 정 회장은 대통령을 영접할 수가 없었다. 2006년 비자금 사건에 대한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이 6월3일로 잡히자, 오해를 살 수 있다며 대통령 수행을 포기했다. 이유야 어쨌든, 현대차로서는 중국 사업 기반을 다지는 데 더없이 좋은 기회를 날려 버렸다.

정 회장이 비자금 사건 이후 2년 만에 재차 위기를 맞고 있다. 파기환송심에서 다시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경제개혁연대는 정 회장 등을 상대로 회사손실 5600억원을 배상하라는 주주대표 소송을 냈다. 내달 5일로 예정된 러시아공장 기공식 참석도 불확실하다.

이를 두고 정 회장 스스로 위기를 자초했다는 말이 나온다. 대법원의 항소심 파기환송부터 그렇다. 시민사회 단체들은 정 회장이 회사 손실에 대한 배상에 적극 나서 분위기를 바꿨다면 결과가 달랐을 것이라고 말한다. 김선웅 변호사는 “항소심 재판부가 집행유예 명분으로 사재출연과 사회봉사 등을 내건 게 문제가 됐는데, 만약 정 회장이 배상을 제대로 했다면 파기사태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개혁연대가 배상을 요구한 것은 2006년 말이다. 그때마다 현대차는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시간만 끌었다. 더 큰 문제는 정작 정 회장은 그런 요구가 있다는 것조차 제때 보고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무조건 아랫사람을 나무랄 일이 아니다. 현대차의 한 임원은 “회사 안의 그 누구도 (회장이 싫어할) 이런 문제를 제대로 보고할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현대차의 더 심각한 문제를 정 회장의 독단적 ‘1인 경영’ 체제에서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엘리베이터 인사’로도 불리는 정 회장의 깜짝인사는 ‘1인 경영’ 체제의 상징이다. 비자금 사건도 이런 후진적 인사관행에 불만을 품은 내부자의 제보가 발단이 됐다. 그 ‘깜짝인사’가 어느 틈에 다시 재연되고 있다. 회사를 떠난 지 10년이나 지난 김용문 전 사장을 4월 초 현대기아차 기획조정실장(부회장)으로 발탁했다. 3월 말에는 현대제철 사장을 임명 3개월 만에 전격 경질하는 정반대 인사를 했다. 지난해 말에는 2년 전에 경질했던 기아차 부회장을 복귀시켰다. “회장님이 비자금 사건으로 감옥에 갔다온 뒤 얼마 동안은 자숙하는 것 같더니 …,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것 같다.” 한 고위임원은 말끝을 흐렸다.

정 회장은 고도의 용병술이라고 자부할지 모르지만, 깜짝인사는 예측이 어렵다는 점에서 경영 안정성을 심각히 해친다. 조직과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은 채, 모든 권한이 총수 1인에 집중된 체제로는 글로벌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한 경영학자는 “현대차가 세계 6위의 자동차 메이커로 성장한 게 기적”이라고 꼬집었다. 내부 견제가 어려운 후진적 지배구조는 또다른 비리와 불법의 온상이 된다.

정 회장은 비자금 사건 직후 “반성의 계기로 삼아 투명하고 윤리적인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며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약속했다. 그러나 이후 실질적인 성과를 찾아보기 어렵다. 소액주주 추천인사를 사외이사로 받아 달라는 시민사회 단체의 요구도 묵살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한다. 이건희 삼성회장이 2006년 대국민사과를 한 지 1년 반 만에 더 큰 위기를 맞고 물러난 것을 보면서, 정몽구 회장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곽정수 대기업 전문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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