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우 편집1팀 기자
|
한겨레프리즘
“현안에 대한 질문보다 덕담을 좀 해 주시죠.” 지난 3월 초 청와대 담당자가 이명박 대통령의 지역 언론인 대상 오찬 간담회를 앞두고 미리 받은 질문에 수정을 요구하면서 건넸다는 말이다. 덕담을 권하는 청와대, 포근하게 와 닿을 법도 한데 필자가 지인한테 이 말을 들었을 때 왜 그토록 황당했을까. 미국산 쇠고기 논쟁을 보면서 그때 찜찜했던 감정의 정체가 또렷해졌다. 국민을 섬기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대통령, 더 낮은 자세로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대통령. 그러나 지난 4월18일 쇠고기협상이 타결된 이후 줄곧 마주하는 정부의 모습은 거짓과 공포의 정치에 가깝다. 국민 의견은 사전에도 사후에도 수용되지 않는다. 정부가 태도를 바꿔 국민 건강을 최우선으로 여겨줬으면 하는 한 가닥 희망도 “여론에 밀려 재협상을 할 수는 없다”는 벽에 부닥치고 만다. 정부는 여전히 본질을 흐리고 여론을 무마하기 바쁘다. 정부는 지난 13일 “미국도 한국 정부의 검역 주권을 보장하기로 했다”며 수전 슈워브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의 발언을 전했다. 태평양 건너에선 곧바로 다른 해석이 나온다. 미국과 캐나다의 육가공업계는 “(슈워브 대표의 발언이) 한국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임의로 중단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라며 한-미 쇠고기 합의 규정에 못을 박았다. 정부와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은 광우병 위험에 대해 불안해하는 국민을 향해 과학적 근거를 대라고 다그친다. 전문가가 아니면 입 다물고 잠자코 있으라는 말이다. 그러면서 광우병 여론에 대해서 오해와 과장, 미신과 선동이라는 딱지를 붙여 왔다. 그러나 쇠고기 수입 확대의 전제조건이었던 동물성 사료 금지 조처에 대해 확인해 보지 않을 정도로 미국을 맹신했던 것은 정부 아닌가. 칼 포퍼는 “과학이란 반증 가능성이다”라고 말한다. 반론과 검증에 대해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쇠고기 안전성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과 상식적인 비판을 봉쇄하는 것은 과학 정신과는 거리가 먼, 진화된 전체주의일 뿐이다. “정부는 지금 국민과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하고 밀어붙이고 있다. 정부가 취해야 할 자세는 ‘안심해도 된다’가 아니라 국민의 건강권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제반 조처를 취하는 것”이라는 교수단체의 성명은 누가 과학의 이름으로 조작의 폭력을 휘두르고 있는지 말해준다. 국민 여론을 외면하는 정부가 기댈 곳은 공권력밖에 없는 것일까. 경찰은 촛불을 든 10대들의 배후를 찾겠다며 학교를 헤집고 다니고, 인터넷 괴담의 진원지를 캐겠다며 네티즌의 신원을 추적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교사들을 동원해 아이들의 휴대전화 문자 내용까지 검열한다. 방송통신위는 인터넷 매체에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하는 댓글을 삭제하라는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인터넷 괴담을 처벌하겠다는 공권력을 보면 ‘술김에 한마디’조차 ‘유언비어 날조 및 유포’로 처벌했던 유신 독재체제가 떠오른다. 민주주의 시계가 30년 전으로 후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남편과 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온·오프 서명을 다 했고 아들은 오프라인 서명을 했으니 우리 세 식구 모두 자수한다. 죄라면 광우병에 걸려 죽을까봐 너무 걱정한다는 것이다.” 경찰청 게시판에 올린 어느 시민의 항변이다. 총체적 부실 협상으로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것도 모자라 여론을 호도하고, 여론을 통제하고,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밑동부터 허무는 것이다. 선진화로 가겠다면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정부의 행태는 광우병만큼이나 위험해 보인다. 정태우 편집1팀 기자windage3@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