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5.08 21:11
수정 : 2008.05.08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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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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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프리즘
7년 만에 방한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의 체류시간은 불과 4시간 반이었다. 그는 이 짧은 시간 한국을 대표하는 정·재계 인사들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저녁식사를 대접하고 국제포럼 행사까지 따라나섰다. 현대차그룹은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사장 부자가 함께 나서 그의 손을 잡았다.
빌 게이츠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성공한 기업인이다. 재산이 580억 달러로 세계에서 세번째로 많다. 하지만 그가 세계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성공한 기업인’을 넘어 ‘존경받는 기업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창조적 자본주의’를 주창했다. 지난 30년 동안 획기적인 기술발전이 세계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믿고 열심히 일했지만, 실제 그 혜택은 소수 부자들의 차지였다고 반성했다. 또 부자들만 누리는 자본주의의 혜택이 전세계 수십억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돌아갈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그 일에 기업들이 앞장서야 하고, 설혹 그것을 통해 직접 이익을 얻지 못하더라도 소비자들의 호감과 인지도 향상이라는 소득을 얻을 수 있다고 호소했다. 그 자신은 이미 재산 대부분을 사회에 기부했다.
상당수 한국 기업인들은 여전히 이윤에만 매달린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이윤의 사회 환원을 두고 오해가 많다. 건전한 기업활동으로 임금을 지급하고 세금을 낸 기업이나 기업인에게 또 나머지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라는 주장은 무리다.” 박용성 두산회장이 상의 회장 시절 밝힌 소신이다. 한국경총의 이수영 회장도 기업의 이윤창출 자체가 사회 환원이라고 주장한다.
이건희 회장이 비자금 사건으로 물러난 뒤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이 대외적으로 삼성을 대표하게 됐다. 그는 지난달 28일 대통령이 주재한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민관회의’에서 처음 공식발언을 했다. “대통령이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우지만 우리 사회에는 반기업 정서가 너무 강하다.” 삼성 위기의 원인을 국민의 반기업정서 탓으로 돌리는 듯한 말이다. 반기업정서 때문에 기업하기 어렵다는 타령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경영실적만 앞세우고 비리·불법을 서슴지 않으면서, 그에 대한 비판을 반기업으로 매도하는 것은 기업을 ‘성역’으로 인정해 달라는 억지에 불과하다. 국내 기업들도 이제 윤리·준법·환경경영과 사회공헌과 같은 사회적 책임이 글로벌 경영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전사적 차원에서 이를 제대로 실천하는 기업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건희 회장은 2006년부터 창조경영을 강조했다. “과거에 해 오던 대로 하거나 남의 것을 베껴서는 독자성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을 원점에서 보고 새로운 것을 찾아내야 한다.” 이 회장과 빌 게이츠 회장은 똑같이 ‘창조’를 강조한다. 하지만 그 의미는 차이가 크다. 이 회장의 창조경영은 이윤창출의 극대화를 위한 것이다. 빌 게이츠 회장은 그것을 뛰어넘어,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재산헌납 계획을 소개하며 빌 게이츠 회장의 뜻에 공감했다. 하지만 같은 시각, 정작 자신이 안전을 책임져야 할 수만명의 이 나라 국민은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시이오 대통령’ 이명박이나 삼성 이건희, 이수빈 회장이 정말 배워야 할 것은 빌 게이츠의 성공과 명성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감과 실천 아닐까.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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