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5.01 20:09
수정 : 2008.05.07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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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호/남북관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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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북한 핵문제는 늘 일정한 주기의 반복되는 패턴을 보였다. 특히 합의가 있으면 꼭 그걸 뒤엎을 의혹이 따랐다. 난항→합의→의혹(반발)→위기(합의 파기) 과정이 그것이다. 익숙하지만 그래서 우려된다.
2005년 9·19 공동성명은 위조지폐 등 불법 금융거래에 대한 대북 금융 제재인 방코델타아시아 문제가 덮쳤다. 합의는 위기로 비화돼 결국 북한은 핵실험까지 했다.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도 그랬다. 이번엔 곧이어 치러진 미국의 중간선거 결과 공화당이 의회를 지배하면서 이면합의 등이 공격을 받으며 만신창이가 돼 버렸다.
2단계 핵 불능화 합의를 담은 지난해 10·3 합의도 비슷하다. 9월6일 이스라엘의 시리아 공습은 10월 들어 북한-시리아 핵 협력설로 비화됐다. 북한이 미래의 핵 확산 금지를 보장하자 일단락된 듯했다. 이 때만 해도 ‘의혹’이었다. 그러나 그 불씨는 다시 살아났다. 그리고 4월8일 핵신고를 둘러싼 북-미 타협안인 싱가포르 잠정합의가 나오자 핵심 현안이 됐다.
2002년 10월 2차 핵 위기를 불러온 고농축 우라늄 의혹도 출발은 미미했다. 부시 행정부는 긴 검토 끝에 제임스 켈리 미 국무차관보의 북한 방문을 결정했다. 돌파구가 기대됐다. 9월 관계 정상화를 위한 평양 공동선언 등 북-일 관계와 남북관계는 급진전을 보이던 시점이었다. 그러나 그 여름 미국 정보당국은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계획에 관한 정보평가를 보고했다. 10월 초 켈리 차관보의 방북은 고농축 우라늄 계획을 추궁하는 걸로 변질됐고, 평양에서는 격렬한 북-미 논쟁이 있었다. 10월16일 국무부는 긴급성명에서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 계획을 ‘시인했다’며 핵개발 계획을 기정사실화했다. 2차 핵 위기의 시작이었다.
4월24일 이번엔 백악관이 시리아-북한의 핵 협력을 ‘확신’한다고 발표했다. 의혹은 이제 사실이 됐다. 그 발표를 둘러싸고 또다른 의혹들이 꼬리를 물고 눈덩어리처럼 커지고 있다. 북한이 5MW 원자로를 복제해 제공할 만한 능력이 있느냐는 기술적인 문제도 그렇고, 시리아 말고도 리비아에서 나온 6불화우라늄의 출처가 북한이라는 리비아 커넥션의 문제, 농축 우라늄 개발과 관련해 파키스탄 핵무기 개발의 아버지인 A.Q. 칸 박사와의 파키스탄 커넥션 등 북한발 핵 확산의 끝은 어디인가라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실제로 이스라엘 권위지 <하레츠>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북한을 압박해 이란과의 핵 협력을 중단시키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면서 북한의 이란 비밀 핵무기 프로그램 지원설도 제기하고 있다. 이 하레츠의 보도는 가볍게 보기 어렵다. 이 신문이 이스라엘 내 군부와 총리실의 갈등을 포함해 북-시리아 핵 협력의 정보 공개를 둘러싼 미국-이스라엘간의 내부 정보를 들여다보듯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혹 제기에 대한 ‘의혹’도 만만치가 않다. 그러나 모략설이나 음모론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북핵은 또다시 미국과 북한 사이의 대립과 갈등, 불신이 깊고 넓어 가늠하기 어려운 국면에 있다. 게다가 중동의 정치 역학, 이스라엘과 미국 내 유대인 등의 이해관계로 더욱 복잡한 양상이다. 다행히 위기의 징후는 아직 없다. 부시 행정부의 협상파와 북한의 사전 조율이 작용한 듯하다. 그러나 11월 대선을 기점으로 보면 부시 대통령의 실질적 임기는 이제 6개월에 불과하다. 미국 안에서는 다시 북한 불신의 정치 역학이 작동하려 하고 있다. 어떤 합의가 되든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강태호 남북관계 전문기자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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