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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4.29 19:29 수정 : 2008.05.07 18:20

정세라/사회정책팀 기자  

한겨레 프리즘

이명박 대통령은 0시에 청와대로 첫 출근을 했다. 공직 사회는 ‘머슴론’으로 다그쳤다. “피곤해하지 말고, 어려워도 ‘죽겠다’ 말고 이럴수록 이마에 기름이 번쩍번쩍 나도록 해야 한다. 자꾸 ‘죽겠다’ ‘힘들다’ 이렇게 말하면 습관이 된다.” 대통령이 국무위원들에게 수차례 당부한 말이다.

덕분에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들은 단숨에 ‘아침형 인간’이 됐다. 고위 공직자들은 대개 오전 7시를 전후해 출근한다. 부처 통폐합으로 보직을 받지 못한 이들이 교육을 간 데 이어, 중앙 부처도 ‘공무원 퇴출제’ 칼을 빼드는 수상한 시절이다. 웬만한 강철 심장을 갖지 않고서야 새벽밥을 먹지 않을 도리가 없다.

공직 사회의 무사안일을 깨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밥을 먹는 공무원들에게 ‘공복’으로서의 자세를 강조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그 해법이 오로지 ‘새벽 출근’과 ‘심야 퇴근’일까? 대통령은 평생을 네 시간씩만 잤다고 한다. 최근에는 “(미국 갔을 때) 두 시간밖에 못 잔 날도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1급부터 9급까지 모든 공무원이 대통령처럼 할 수는 없다. 이들은 ‘일하는 정부’의 공무원이기도 하지만 ‘행복하게 살 권리’를 가진 국민이기도 하다.

당장 육아 부담이 큰 여성 공무원들이 발을 구르고 있다. 새벽 출근이 필요하다면 하겠지만, 당장 아침 일찍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속을 태우는 경우가 허다하다. 보건복지가족부의 한 간부는 “내가 7시30분에 출근하니, 내 밑에 있는 직원들도 일찍 나올 수밖에 없다”며 “어린아이를 둔 여직원들의 처신이 여간 난감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잘살아 보세”를 부르짖던 시절이 있었다. 무조건 ‘남보다 더 일해야 더 잘산다’는 논리가 통했다. 지금 대통령이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로 한창 잘나갈 때 얘기다.

하지만 세월이 바뀌었다. 지금은 ‘삶의 질’을 따지는 시대다. 7·4·7 숫자로 표현되는 성장의 외형이 중요한 게 아니라, 행복하고 건강한 삶이 중요하다.

1인당 지디피(GDP·국내총생산) 몇 천달러 시대의 기업체 사장님과 2만달러 시대의 대통령은 목표가 달라야 한다. 국가경제의 외형적 성장뿐 아니라, 국민의 행복과 건강이라는 속사정을 돌봐야 한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은 “도시 근로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쇠고기 먹는 게 안 맞다. 소비자에게 값싼 고기를 먹게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하지만 값싼 쇠고기를 그저 많이 먹는 게 행복이던 시대는 지났다. 이밥에 고깃국을 배 터지게 먹는 게 핵심이 아니란 얘기다. 국민들은 밥상에 오르는 쇠고기의 양과 가격도 중요하지만 가족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은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니 대통령께서는 좀 주무시라. 그리고 시간이 나시면, 신동엽 시인의 시 한 편 읽기를 권한다.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 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 묻은 하이데거 러셀 헤밍웨이 장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 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소라는 인사 한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 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네 시간만 자고는 견딜 수 없는 보통 사람은 삶의 질과 행복을 아는 대통령을 원한다.

정세라/사회정책팀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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