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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4.17 19:22 수정 : 2008.04.17 19:29

곽정수/대기업 전문기자

한겨레프리즘

미·일 순방길에 나선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지 두 달이 됐다. 베일에 가려있던 그의 실체도 많이 드러났다. 21세기에는 지도자의 리더십에 따라 국가 운명이 좌우된다. 이 대통령은 그동안 국민들에게 어떤 리더십을 보여줬을까?

대통령은 당선 직후 전경련을 방문해 대기업 총수들에게 “애로사항이 있으면 직접 전화하라”고 말했다. 기업인 102명과 언제든 통화할 수 있는 핫라인, 이른바 ‘MB폰’도 개통했다. 부처 산하 위원회는 없애면서도 대통령 직속 위원회는 계속 만들고 있다. 부총리제는 아예 없애버렸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이명박 리더십의 열쇳말은 ‘중앙집권’이다. 모든 것을 대통령이 총괄하고, 결정한다.

대통령이 왜 이런 리더십을 보여주는지는 그가 걸어온 길이 잘 말해준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경로 의존성’이다. 1941년생인 이 대통령이 현대건설 사장이 된 것은 77년이다. 만 36살이 채 안됐을 때다. 그리고 91년 현대건설 회장을 끝으로 현대를 떠났다. 현대에서의 26년이 ‘경제대통령’이라는 큰 정치자산을 만들어줬듯이, 이명박의 틀도 결정됐다. 그가 사장을 지낸 7개 현대 계열사는 대부분 건설 관련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고객수가 아주 적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아파트를 많이 짓지만, 당시는 관급 토목공사나 대기업 확장공사가 대부분이었다. 사업 결정권을 소수 최고위층이 쥐고 있다. 이명박의 역할은 이들과 만나 담판을 짓는 것이다. 그의 중앙집권적 리더십은 그 산물이다.

대통령의 한마디에 청와대 여직원들에게 청바지 금지령이 내리고, 관가에는 조기출근 열풍이 분다. 많은 미국 기업들은 1990년대 자율복장제를 도입했다. 성공한 기업들의 일하는 방식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짧게 일하면서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세상은 바뀌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생각은 정주영 회장을 따라다니던 1970∼80년대 권위주의 시대에 멈춰 있다. 모든 것을 직접 해야 직성이 풀린다. 당연히 권한위임이 적다. 이런 리더 밑에는 2인자가 없다. 총수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하는 ‘정주영식 경영’의 판박이다.

이 대통령에게는 일관된 국정철학과 원칙이 보이지 않는다. 친시장이라는 정부가 생필품값 특별관리에 들어가자 많은 기업인이 당혹해한다. 대통령의 지시로 인천공항에는 기업인 전용 귀빈실이 생겼다. 공직자 귀빈실이라는 기존 특권은 깨졌지만, 기업인 귀빈실이라는 새 특권이 만들어졌다. 청와대 핫라인에도 대통령 지시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오만과 독선이 묻어난다. 대통령은 이념 대신 실용을 표방했다. 실용주의는 결과 지상주의다. 과정보다 실적을 중시하는 게 기업이다. 아무리 열심히 했어도 결과가 나쁘면 변명이 안 된다. 반대로 과정은 엉망이어도, 결과만 좋으면 ‘굿’이다. 실용주의 만능에서 일관된 국정철학과 원칙은 설자리가 없다. 대통령과 기업체 사장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정치는 돈의 힘만으로 안된다. 오히려 명분과 가치가 중요할 때가 많다. 능률과 함께 형평도 중요하다.

경제학자들은 히틀러를 ‘인플레의 의붓자식’이라 부른다. 1차대전 패배 뒤 살인적 인플레로 고통받던 독일 중산층은 선거를 통해 히틀러를 권좌에 앉혔다. 그 종말은 파시즘이었다. 한국 중산층은 이명박을 선택했다. 노무현만 아니라면 누구든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 이명박이 ‘노무현 혐오증의 의붓자식’으로 역사에 기록된다면 비극이다.

곽정수/대기업 전문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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