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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4.10 21:42 수정 : 2008.04.10 21:42

강태호/남북관계 전문기자

한겨레프리즘

“돼지 잔등에 말안장을 얹는다고 경마가 되랴.” 2005년 5월 일본은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추진했다. 북한이 한 말이다. 북한식 어법이라고 할까? 풍자가 있다. <로동신문> 4월1일치에 실린 글에서 논평원은 “삶은 소대가리도 웃다 꾸레미 터질 노릇이다”라고 비아냥댔다.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을 두고 한 말이다. 만우절 농담이었으면 좋으련만 현실은 팍팍하다. 이 글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역도’가 됐고 남북관계는 졸지에 험악하게 됐다.

지난 2002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피그미’(난쟁이), ‘버릇없이 구는 아이’라고 비난했다. 모두 그 대가를 치렀다. 남북관계는 물론이고 북-일 관계도 망가졌다. 재선 뒤인 2005년 6월에야 부시 대통령은 ‘미스터 김정일’로 바꿔 불렀다. 그해 9월 6자 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이 가능했던 출발점 가운데 하나다. 북한은 스스로 그토록 비난하던 미국의 잘못을 반복하려는가.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는 5년 가까이 남아 있다. 역도라는 말은 하지 말아야 했다. 그렇다고 남쪽의 말들, 이 정부가 남북관계를 두고 한 말들이 옳다는 건 아니다.

남과 북 모두 15~16년 전 얘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그때와는 다른 시대에 살고 있다. 시대착오다. 북은 이 정부의 정책을 15년 전 ‘핵 가진 자와는 악수하지 않겠다’는 김영삼 대통령의 그것이라며 역도 등 막말을 퍼부었다. 비핵·개방3000이 선핵폐기론으로 비판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예전의 악수하지 않겠다는 말처럼 협력을 거부하는 건 아니다. 단순무식하게 말하면 핵 포기하면 400억달러의 협력기금으로 도와주겠다는 것이니 너그럽게 보아준다면 그건 ‘북한판 잘살아보세’다. 사실 남한의 경제발전 경험에 대해선 김정일 위원장 자신이 99년 10월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만나 좋게 말한 적이 있다. “요즘은 박정희 대통령이 좋게 인식되는 것 같은데, 옛날에는 유신이니 해서 비판이 많았지만 초기 새마을운동을 한 덕택에 경제 발전의 기초가 되었던 점은 훌륭한 점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남북관계의 정신을 16년 전인 92년 발효된 남북 기본합의서에서 찾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정작 정상 차원에서 기본합의서의 실천을 담보하려 한 2000년 6·15 공동선언과 그 틀을 복원한 지난해 10월의 2차 남북 정상회담 합의를 애써 무시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출범 뒤 전임 클린턴 대통령의 정책은 모두 안 된다고 했다. 부시의 그런 대북정책은 실패했다. 미국의 잘못을 답습하려는가.

기본합의서만으로는 남북관계는 발전할 수 없었다. 김대중 정부도 노무현 정부도 노태우 대통령이 합의한 기본합의서를 이행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정부의 실세라 할 유우익 대통령실장은 부임하면서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보지 않는다고 했다. 그 말과는 다르다. 지난 10년을 제대로 평가하려는지 의심스럽다. 북한은 이 정부가 “6·15 공동선언과 (2007년 남북 정상이 합의한) 10·4 선언 이행을 공공연히 부정해 나서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건 어느 일방의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답이 있어야 한다. 총선 때문에 얼버무린 것이라면 용렬하다고 할밖에 없다.

남쪽 내부의 일부 ‘논평원’들은 북한이 이 정부를 길들이려 한다며 단호한 대처를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길들이기가 나쁜 것인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와 여우가 말하듯이 남북은 서로에게 길들여질 필요가 있다. 그건 서로를 알아가며 가까워진다는 뜻인데 나쁘게 볼 일은 아니다.

강태호/남북관계 전문기자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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