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정책팀/정세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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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프리즘]
“가슴이 찢어집니다. 꼭 살아돌아오세요.” 박근혜 엄마의 입양 약속을 내세우는 친박연대. “견제와 균형! 투표합시다!” 독주를 막아 달라 졸라대는 통합민주당. “경제를 살려낼 힘, 한번 더 힘을 모아주세요.” 대선 카드를 다시 꺼낸 한나라당. ‘여의도’는 비장한데, 유권자들은 정작 심드렁하다. 여느 때보다 투표율이 낮을 것이란 예측만 무성하다. 누구는 비 오기를 바란다 하고, 누구는 햇볕이 쨍쨍하기를 바란단다. 날씨 따라 투표율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1309명 후보들이 표를 세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자, 누구를 찍어야 하나? 어느 당을 골라야 하나? 다들 중산층·서민을 위한 정당이라 한다. 경제연구소들은 고개를 젓는데, 6~7% 경제성장 다짐도 요란하다. 유권자로선 고민스러울 따름이다. 이럴 때 흔히 듣는 얘기가 정책 선거다. 이게 참 쉬운듯 어렵다. 워낙 말장난이 많아서, ‘행간을 읽는’ 공약 독해가 쉽지 않은 탓이다. 아마도 ‘독심술’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속내를 들여다봐야 하니까. 예컨대 ‘민간 보육시설 업그레이드’ 공약이 있다. 질높은 민간 보육시설을 많이 만든다는 얘기다. 그런데, 어떻게? 보육료 상한제를 없애고 민간 시설의 가격 제한을 풀어준다고 한다. 한 달 20만~37만원대로 묶인 보육비를 자율화하겠다는 얘기다. 물론 돈이 더 들어가더라도 더 나은 어린이집을 원하는 부모들이 있다. 하지만 상한제 폐지로 보육료가 껑충 뛸까 맘 졸이는 이들도 적지 않다. 내 아이를 위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유권자 몫이지만, 업그레이드가 무엇인지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의료·교육·복지·금융서비스 일자리 늘리기’ 공약도 있다. 규제를 완화해 고용 규모와 서비스 산업을 키우겠다는 얘기다.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데야 나쁠 게 없다. 하지만, 어떻게? 의료 규제를 완화한다고 한다. 대한의사협회나 기획재정부 등이 말하는 규제 완화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 영리병원 허용, 민영 의료보험 확대 등이다. 역시나 공약은 솔직하지 않다. 무슨 규제를 어떻게 완화할지는 슬쩍 피해간 채, 일자리와 산업 성장의 깃발만 흔들어댈 따름이다.물론 민영보험이 잘되면, 보험산업도 성장하고 보험 설계사 일자리도 늘어날 것이다. 고급 병원이 민영보험과 손잡고 질높은 서비스를 내놓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공적보험인 건강보험을 흔드는 이상, 누가 이득을 보고 누가 손해를 보는지는 분명히해 둘 일이다. 공적보험인 건강보험은 사회연대의 원리다. 능력만큼 내고 필요한 만큼 가져간다. 내가 건강할 경우, 내가 낸 보험료는 다른 아픈 사람을 위해 쓰인다. 하지만 민영보험은 내가 낸 보험료의 상당 부분이 보험사의 이윤으로 돌아간다. 기업임원들의 고액 연봉이나 보험을 팔기 위한 마케팅 비용으로도 사용된다. 예컨대 삼성생명은 해마다 5천억~6천억원의 순익을 냈는데, 이건희 회장과 삼성 계열사 등 주주들에게 400억원의 현금 배당을 했다. 이 회사 등기 임원의 평균 연봉은 20억원이다. 민영보험이 확대될 경우 이런 돈들은 국민 의료비에서 나와야 한다. 총선날이 밝았다. 날이 흐리고 비가 오는 곳도 있다고 한다. 사실 ‘돈’도 있고 ‘빽’도 있는 이들이야, 무슨 걱정이랴. 하지만 별다른 사회적 안전판이 없는 맨몸의 사람들은 투표를 해야 한다. 기성세대보다 늦게 태어난 죄로 비정규직의 굴레를 쓴 ‘88만원 세대’도 투표를 해야 한다. 내 한 표가 승패를 가르지는 않을지라도, 나 역시 투표장으로 간다. 사회정책팀/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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