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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4.03 22:28 수정 : 2008.04.03 22:28

정태우/편집1팀 기자

한겨레프리즘

거리마다 어지럽게 내걸린 총선 펼침막이 국회의원의 존재를 느끼게 하는 때다. 그나마도 심드렁하다. 4년마다 되풀이되는 낯익은 풍경 속 고만고만한 구호들이, 허공에 내걸린 모습처럼 공허하기만 하다.

‘강남까지 직통전철 개통, 국제중고 설립’. 무심결에 지나친 펼침막인데, 도시 풍경을 가로질러 자꾸 마음에 걸린다. 내 아이들 때문일까. 후보의 공약을 찾아봤다. “일산의 교통과 교육체계를 확 바꿔 부동산값을 분당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 역시나, 얄팍한 계산속에 아이들은 없다.

대선에 이어 총선에서도 교육공약이 넘친다. 정작 아이들은 유권자가 아니어서 아무런 선택조차 할 수 없는데도, 교육문제 해법이라도 찾은 양 구호가 요란하다. 박제화된 공약이 판친다. 자율형 사립고를 유치하겠다는 후보들이 넘쳐난다. “외고 특목고 자사고 등을 유치하여 동작을 선진 교육지대로 변모시키겠다”는 후보의 목소리가 한껏 위세를 떨친다. 가히 명문고 종합선물세트라 할 만하다.

“가난의 대물림을 끊겠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교육이념, 아니 ‘교육실용’이다. 그 방안의 하나가 자율형 사립고 100곳을 설립하겠다는 거다. 누구도 가난하길 바라지 않지만 누구나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동등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생각이 어떻든 자율형 사립고는 또 하나의 명문고로 비친다. “자율형 사립고는 A급 학생들을 뽑아 A급 인생을 살아갈 발판을 만들겠다는 것”이라는 명문고 출신 한 지인의 비판을 굳이 내세울 필요도 없다. 대통령이 속한 한나라당 후보들의 공약을 보라. 자율형 사립고 공약에는 어김없이 ‘명품교육’이니 ‘교육특구’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한번 따져보자. ‘일류대학 목적고’라 불리는 특목고가 전국에 55곳이다. ‘한국판 귀족학교’라 불리는 자립형 사립고가 6곳이다. 거기에 앞으로 자율형 사립고 100곳이 보태진다. 그렇게 되면 전국 고등학교(2159곳)의 8%가 입시 명문고로 굳어질 것이다. ‘20 대 80’ 사회보다 더한 ‘10 대 90’의 사회가 미래 세대에게 악몽처럼 펼쳐질 것이다.

그걸 피하려면 방법은 간단하다. 전국의 모든 학교를 명문고로 만들라. 모든 학생이 동등하게 양질의 교육을 받게 하라. 모든 아이들은 좋은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진정으로 가난의 대물림을 막겠다면 그렇게 하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가난의 대물림을 끊겠다는 말은 앞뒤가 안 맞는 모순투성이 실용일 뿐이다.

“잘 훈련된 교사와 책임을 다하는 아이들, 느슨하되 기초에 충실한 교육방법, 교사에 대한 폭넓은 자율권 부여, 갓난아이에게 그림책을 선물하는 정부, 그리고 재능있는 아이들을 밀어주기보다는 뒤처진 아이들에게 집중함으로써 전체적으로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교육관”(<월스트리트저널> 2월29일치)을 가진 핀란드를 부러운 눈으로 탐색하는 미국에서 배우라. 학생 1인당 8700달러를 쓰면서도 고교생 중도 탈락률이 25%에 이르는 미국이, 학생 1인당 7500달러를 쓰면서도 중도 탈락률이 4%에 그치는 핀란드 교육에 쏟는 관심을 따라가 보라. 이게 입버릇처럼 말하는 선진국 배우기 아닌가.

며칠 뒤면 총선 투표일이다. 특별한 아이들을 위한 특별한 학교는, 그곳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에겐 멍에다. 투표장으로 가는 길에 무엇이 아이들의 오늘과 내일을 행복하게 할지 한번쯤 생각해 보자. 더 나은 교육에 대한 선택은 아이들의 소망에 귀 기울이는 것이지, 후보들의 셈법에 박수치는 일이 아닐 테니까.


정태우/편집1팀 기자 windage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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