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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4.01 19:30 수정 : 2008.04.01 19:30

고명섭/책·지성팀장

한겨레프리즘

베네딕트 앤더슨이 ‘상상의 공동체’라는 용어로 분석한 것은 ‘네이션’(nation)이다. 네이션이란 말은 그 자체로 국가·국민·민족이란 뜻을 모두 품고 있다. 국가이자 국민이자 민족인 것이 네이션이다. 앤더슨은 이 네이션을 두고 ‘상상의 공동체’라고 했다. 왜 ‘상상’인가. 그 공동체 구성원들이 실상 서로 알지 못하면서도, 내적으로 끈끈하게 연결돼 하나를 이루고 있다는 이미지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상상이 단순한 환상이나 망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네이션은 역사적으로 구성되고 현실적으로 작동하는 실체다.

문제는 이것이 우리말에 들어올 때 불거진다. 맥락에 따라서 국가로도, 국민으로도, 민족으로도 번역된다. 그리고 그 번역의 결과는 커다란 말빛깔 차이를 낳는데, 그런 차이를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 분단이라는 한반도의 특수성이다. 한반도 안에서 네이션은 ‘국가’와 ‘민족’으로 찢겨 유혈 낭자한 말들의 내전을 벌였다. 그런 내전의 한 양상을 보여주는 것이 최근 출간된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라는 책자다. 보수신문들이 앞장서 떠들썩하게 보도한 이 ‘뉴라이트판’ 역사책은 2년 전 출간돼 역시 떠들썩하게 보도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의 역사관을 그대로 이어받은 책이다. 두 책의 집필자들은 민족을 기각하고 국가를 옹호한다.

기이한 것은 이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데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를 동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집필에 참여했던 교수가 <대안교과서> 추천사로 쓴 글은 이 점을 간명하게 보여준다.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다. 지금까지 한국의 역사는 민족을 주체로 쓴 상상의 역사다.” 요컨대, 민족은 허구이며 국가야말로 실체라는 인식이 깔린 주장이다. 그러나 이것은 앤더슨 견해의 편의적 사용이자 의도적 왜곡이다. 민족이든 국가든 주관적으로 부인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게 아니다.

이들이 민족을 밀쳐내고 국가를 앞세우는 의도는 그 책의 서술과 편집에 또렷하게 드러나 있다. 이른바 ‘근대화’ 세력을 국가의 유일 적통으로 인증하려는 이데올로기 작업인 것이다. 그리하여 이 책을 통해 친일 부역자들은 ‘시장경제의 기반’을 닦은 산업화 세력이 되고, 독재자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기틀을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세운 ‘탁월한 정치가’가 되며, 박정희 군사 쿠데타는 “근대화 혁명의 출발점”을 이룬 “일대 변혁”이 된다. 일제와 독재에 대항해 싸운 민족·민주 세력은 역사의 조연으로 밀려나고 심지어는 익명적 존재로 지워진다. 이들의 책에서 ‘국부’ 이승만이 저지른 ‘30만 보도연맹원 학살사건’은 단 한 문장으로 얼버무려지고, 수만 명의 목숨을 짓이긴 ‘제주 4·3사건’은 ‘좌파세력의 무장반란’으로 처리된다.

‘네이션’이 공동체 구성원을 규합하고 호출하는 이념으로 작용하면 내셔널리즘, 다시 말해 국가주의 또는 민족주의라는 명칭을 얻는다. 한국 현대사는 거칠게 요약하면, 국가주의 대 민족주의의 싸움이었다. 반공·분단 국가주의가 평화·통일 민족주의를 진압하고 신문하고 처벌하는 과정이었다. 냉전의 장벽을 넘어 남북 화해를 요청하는 민족주의는 최근에야 시민권을 얻었다. 이명박 정부 등장으로 더욱 보수화한 정치·사회 기류를 타고, 뉴라이트의 편협한 역사인식이 정통으로 복권돼 그들의 역사책이 말 그대로 ‘교과서’가 된다면, 그것은 이제 겨우 아물기 시작한 분단의 상처를 덧내고 한반도 역사를 독재시절로 되돌리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럴 조짐이 보인다는 것이 두려운 일이다.

고명섭/책·지성팀장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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