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3.25 19:52
수정 : 2008.03.26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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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복기/노드콘텐츠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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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프리즘
고교 때 어떤 선생님은 학생들이 질문을 하면 “그냥 외워”라고 말씀하셨다. 교과서는 두껍고 암기해야 할 내용은 수없이 많았으며 경쟁자는 수십만명이었다.
지금도 그때 외운 것들은 작은 단서만 있으면 머릿속에서 기계적으로 흘러나온다. ‘마운트뉴우만과 아이언놉’. 오스트레일리아와 함께 늘 떠오르는 지명이다. 내 기억 속에 그 이름은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보다 더 뚜렷하다. 간 적은 물론 사진으로도 보지 못한 곳이다. 그럼에도 그 이름이 지금까지 내게 친근한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철광석을 수입하는 지역을 묻는 인문지리 시험 문제에 자주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런 예는 내 기억 속에 많다. 러시아 국민악파라는 말만 들으면 내 입에서는 ‘무소르그스키, 림스키 코르사코프, 발라키레프, 퀴, 보르딘’ 등 5명의 이름이 세트로 튀어나온다. 고교 졸업할 때까지 그들의 곡 하나도 들어보지 못했지만 시험에서는 틀려본 적이 없다. 조선과 고려의 왕 이름을 즉위한 순서대로 외웠고, 큰 사건이 일어난 연대도 머리에 쑤셔넣었다. 백제 멸망 660년, 고구려 멸망 668년, 고려 건국 918년, 조선 건국 1392년, 임진왜란 1592년 등. 이런 것들을 왜 외워야 하는지 화가 날 때도 많았다.
사고력과 논리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는 수학이 그 시절 적어도 내게는 암기 과목이었다. 지금도 어떤 문제를 보면 ‘양변을 제곱한 뒤 좌변에 와이(Y)만 남긴 뒤 나머지를 우변으로 옮기고 양변에 루트를 씌우라’는 선생님의 말이 생각난다. 도형, 방정식, 미분, 적분 등 분야별 기출 문제를 푸는 방법을 열심히 외웠다. 고교 때까지 국어, 영어와 함께 3대 주요 과목이었던 수학은 대학에 들어간 뒤 내 삶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그 유명한 피타고라스 정리는 지금까지 써볼 기회조차 없었다.
요즈음엔 자꾸 의문이 든다. 왜 그런 쓰잘 데 없는 것들을 외워야 했을까? 나이가 들면서 학교에서 정작 삶에 필요한 것은 배우지 못했음을 새록새록 느끼게 됐다. 10년 넘게 생물을 배웠지만 산과 들에 가면 까막눈이다. 나무는 물론이고 먹을 수 있는 나물조차 구별하지 못한다. 중·고등학교 6년 동안 기술과 공업을 배웠지만 내 손으로 탁자를 짤 수 있게 된 것은 나이 마흔이 다 되어서 목공학교를 다닌 뒤였다.
일제고사의 부활로 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의 시대가 다시 돌아왔다. 앞으로 학교에서 학생들의 질문은 더 줄어들 것 같다. 학교끼리 성적이 비교되니 교사들은 문제 푸는 요령을 가르치기에도 시간이 모자랄 것이고, 불필요한 외우기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이 모든 게 국가경쟁력 강화니 인재육성이니 하는 명분 아래 이뤄지고 있다. 국민교육헌장에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는 게 교육의 목표라고 씌어 있지만 우리 교육은 그와는 거리가 멀다. 학교는 획일적인 기준으로 학생 모두를 한 줄로 세워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잘라내고 있다. 더구나 그렇게 교육받은 우수한 ‘인재’는 국가 경쟁력 강화와는 거리가 먼 법대, 의대, 치대, 한의대에 몰려간다.
그렇다고 지금의 학교 교육이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대학, 아니 대학원과 박사과정까지 마쳐도 집안의 전구를 갈아 끼우거나 고장난 가구 하나 고치지 못하는 기형적 인간이 적지 않다. 교육의 목적이 삶에 필요한 지식을 가르치는 데 있지 않고 순서 매기기에 있기 때문이다. 일제고사는 그런 교육의 극단적 상징이다.
권복기/노드콘텐츠팀 기자
bokk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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