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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3.20 19:33 수정 : 2008.03.20 19:33

강태호/남북관계 전문기자

한겨레프리즘

남북은 지금 서로 쳐다보고 있다. 김하중 통일부 장관은 지난 13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조급해하지 않고 모든 여건이 성숙해져서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리겠다.” 북한도 기다리고 있다. 조급해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럼 남북대화는 어떻게 되는가. 기다리면 대화 문이 그냥 열릴 것인가. 가뜩이나 경제가 깜깜한데 남북관계의 불안마저 겹쳐질까 우려된다.

그런 걱정이 조급함일 수도 있다. 당당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김 장관의 말이 그렇다. 그는 11일 취임식 뒤 기자들에게 “통일 장관이지만 사진찍기 등에 연연하지 않고 의연하고 당당하게 때를 기다릴 것”이라고 했다. 말은 맞다. 그러나 누구도 회담을 위한 회담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말을 뒤집어 보면 자신이 외교안보수석이었고 주중대사였던 앞선 정부에선 장관이나 대통령이 북한과 사진찍기 등에 연연했다는 말인가? 말에 가시가 있다. 남을 깎아내린다고 자기 얼굴이 이뻐지는 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5년 전에 그랬다. 사진이나 찍자고 워싱턴에 가지는 않겠다. 할 말은 하겠다고 했다. 당당함을 보이려는 것이었지만 비판을 받았다. 당당한 자세 때문이 아니라 오만하게 비쳤기 때문이다. 하지 않아도 될 말이었다. 물론 미국 눈치를 볼 필요가 없듯이 북한 눈치를 볼 것도 없다.

김 장관은 이명박 대통령의 비핵·개방 3000 구상을 ‘남북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 핵심 전략’이라고 말했다. 이 말도 지나치다. 비핵·개방 3000은 대통령 후보의 공약에서 아직 구상단계에 머물러 있다. 정책 요건을 갖추고 있지 않다. 심하게 말하면 구호에 불과하다. 실현 가능성과 수단을 모두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엔 이를 위해 400억달러에 이르는 국제적인 대북협력기금을 마련하는 방안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감감소식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지난 10여 년 유지해 온 포용정책으로부터의 이탈이라는 비판과 우려를 쏟아낸다. 당사자라 할 북한도 속마음을 드러냈다. 총련기관지 <조선신보>는 “너무도 북을 모르는 소리이며 같은 민족을 모독하는 일”이라고 반발했다. 논란의 와중에 있는 것이다. 비핵·개방 3000은 보완이 필요하며, 그것이 올바르게 이행되려면 상대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설득이 필요하다. 그는 17일 오전 부임 뒤 처음 주재한 통일부 월요 정례 간부회의에서 ‘겸손’을 화두로 제시했다. 그 겸손과 거리가 있는 말이다.

그래서인가 그가 외교안보수석으로 보좌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이 돋보인다. 김 전 대통령은 11일 한승수 국무총리의 예방을 받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북한을 비핵화하는 과정에서 남북관계를 악화시킬 필요는 없다.” 핵문제 해결-남북관계 개선 병행론은 김 전 대통령의 지론이다. 비핵·개방 3000은 선 핵폐기론 내지 연계론이다. 다르다. 그럼에도 김 전 대통령의 말은 우회적이고 은근하다. 그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기대를 나타냈고 선을 긋지도 않았다. 김 전 대통령은 한 총리에게 ‘지금 야당이 반쯤 친정’이라는 덕담을 건네기도 했다. 한 총리 역시 과거 김 대통령 재임 때 외교 장관이었다.

김 장관은 도올 김용옥과의 대담에서 한국인들의 자기비하를 지적하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성취와 가능성을 너무 인색하게 평가하고 서로 치고받고 싸운다. 보다 자신감을 갖고 당당하게 모든 것을 포용하면서 역사를 긍정적으로 리드해 가야 한다.” 불과 얼마 전 대사 때 한 말인데, 장관이 돼서도 그 말대로 하길 바란다.

강태호/남북관계 전문기자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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