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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3.18 19:43 수정 : 2008.03.18 22:48

사회정책팀/정세라 기자

한겨레프리즘

바야흐로 ‘실용’의 시대다. 새 정부는 인수위원회 시절 ‘창조적 실용주의’를 국정 철학으로 제시했다. 소모적인 논쟁은 걷어치우고 ‘일 잘하는’ 정부가 되겠다는 의지라고 얘기했다. 공직자 인선을 하고 나서도 일 잘하는 능력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았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그런데 이런 새 정부에 참으로 달갑지 않을 유행어들이 따라붙었다. 고소영-에스라인, 강부자 내각, 측근 정부 …. 대통령은 그저 일 잘할 사람들을 골랐다는데, 국민들은 새 정부에 경고성 빨간 딱지를 붙여 버렸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대통령은 인사 논란과 관련해 ‘일말의 책임’을 인정한다. 하지만 경고성 딱지를 그저 여의도가 툭하면 뿜어내는 ‘정치적 공격’ 정도로 치부해 버리고 싶은 눈치도 다분하다.

정치적 공격도 빌미가 정당하지 않으면 먹히지 않기 마련이다. ‘일 잘한다’는 ‘실용’은 그 자체로는 나쁠 게 없다. 문제는 새 정부의 실용이 최소한도의 ‘명분’ 확보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데 있다.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는 논란거리가 될 일을, 새 정부는 실용의 이름으로 거침없이 해치운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은 사돈인 최윤식 서울대 의대 교수를 주치의로 임명했다. 대통령 주치의는 청와대 수석비서관(1급) 대우를 받는 자리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건강을 살피는 막중한 공직이다 보니, 의료계의 관심과 물밑 경쟁도 뜨거웠다. 어느 병원이 주치의를 배출할지, 의료계 내부의 위상도 걸려 있는 예민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여러 명망 있는 의사들이 물망에 올랐지만, 결국 최 교수가 낙점됐다. 최 교수의 아들은 대통령의 둘째사위로 같은 서울대 병원에서 일한다.

사실 주치의 선발에 정해진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 그룹의 추천이 고려되고 대통령의 의사도 중요하다. 하지만 대통령 주치의가 중요한 공직이라는 점에서, 사돈 인선은 뒷말을 낳을 수밖에 없다. 최 교수 역시 이런 점을 고려해 “처음에는 고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최 교수가 이미 대통령의 건강을 돌본 경험이 있고, 사돈으로 더 편안한 관계라는 점을 들어 ‘일 잘할’ 주치의로 그를 낙점했다. 사돈을 공직에 임명함으로써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는 우려는 손쉽게 외면한 셈이다.

인사청문회 뒤 논란이 더 커지고 있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후보도 문제의 시발은 대통령과의 특별한 관계다. 최 후보는 “부당한 압력이 오면 대통령과 담판을 짓더라도 방송의 독립을 지켜 나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정신적 멘토’라 이르는 최측근이 방송 전반을 좌지우지할 자리에 온다는데, 최 후보의 다짐을 쉽사리 믿기는 어렵다. 하지만 청와대는 여전히 ‘일 잘할’ 사람을 쓰겠다는데 괜한 시빗거리를 만든다는 태도다. ‘오얏나무 아래서 갓을 고쳐 쓰지 않는다’는 상식은 이명박식 실용을 이길 수가 없는 형세다.

상당수 인사들이 인사 검증을 거치며 낙마했지만, 운 좋은 일부는 도덕적 흠집과 반대 여론의 포화에도 공직을 꿰찼다. 실용을 방패로 썼지만, 그나마 실용의 근거도 미약해 보이는 게 걱정이다.


말은 시대적 쓰임새에 따라 때와 먼지를 타기 마련이다. ‘정의사회 구현’ 하면 5공 독재가 떠오르는 것은 그런 이유다. 멀쩡한 말이 오염되고 나면 다른 단어를 고르는 수고를 해야 한다. 새 정부의 국정 철학으로 채택된 ‘실용’이란 단어가 최소한의 명분도 지키지 않는 ‘몰염치’의 뉘앙스를 띠게 될까 안쓰럽다.

사회정책팀/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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