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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3.12 08:26 수정 : 2008.03.31 18:08

정석구/논설위원실장

정석구 논설위원실장

우리 속담에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말이 있다. 잘못한 사람이 오히려 역정을 내며 큰소리 친다는 뜻이다. 최근 삼성 특검을 둘러싸고 관련 당사자들이 보이는 반응이 꼭 그 짝이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삼성 돈을 받았다고 공개한 김성호 국가정보원장 내정자와 이종찬 청와대 민정수석 등 직접 당사자가 금품 수수를 부인하는 것은 그럴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부인하는 수준을 보면 듣기에 민망할 정도다.

김용철 변호사는 김 내정자가 검찰에 재직할 당시 “이학수 본부장에게 말하면 줄 것이다”며 돈을 요구해 직접 돈다발을 김 내정자에게 전달했다고 사제단에 고백했다. 그런데도 그가 국정원 공보관실을 통해 내놓은 공식 입장은 “공직자의 한 사람으로서 한 점 부끄러움이 없고 떳떳하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이런 공식 입장과는 달리 그는 사제단 기자회견을 전후해 직접 또는 제3자를 통해 김 변호사와 접촉했다. 때로는 회유도 하고, 때로는 협박으로 받아들일 만한 말을 전하기도 했다. 김 내정자의 메시지를 전달한 사람은 언론사 고위 간부들이었다. 이런 사실은 누구보다 김 내정자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수석도 마찬가지다. 이 수석은 사제단에 의해 “(검찰) 현직 신분으로 삼성 본관 이학수 사무실을 방문하여 여름 휴가비를 직접 받아 간” 사람으로 지목됐다. 그러나 이 수석은 사제단의 금품 수수 주장을 ‘무혐의’로 결론난 비비케이(BBK) 사건과 비슷하다며, 이런 무분별한 폭로에 대해 끝까지 진상을 규명해 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수석의 말만 듣고 있다 보면 김 변호사는 비비케이 사건의 김경준 같은 사람 아니냐는 착각을 하게 한다. 이 수석은 그의 말대로 제발 사제단이나 김 변호사를 상대로 하루빨리 법적 대응에 나서 진실을 가리기 바란다.

청와대는 아예 이번 기회에 삼성 특검을 무력화하려고 작정한 듯하다. 청와대 대변인은 사제단의 금품 수수 명단 공개에 대해 대통령이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안타깝다”는 게 무슨 뜻인가. 청와대 대변인의 설명을 종합하면, ‘아니면 말고 식의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면서 상대방 흠집내기를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정도로 이해된다. 한 보수언론은 대통령이 “근거 없는 떡값 폭로를 왜 깨끗하게 정리하지 못하냐”며 격앙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특검 수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사제단의 금품 수수 공개를 ‘근거 없는 허위 폭로’로 규정해 버린 것이다.

청와대의 이런 인식은 검찰 고위간부 인사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사제단이 기자회견에서 “곧 있을 검찰 간부 인사에서도 핵심 보직에 삼성으로부터 자유로운 분들을 임명”할 것을 권고했지만 아예 무시했다. 앞으로 더는 사제단이나 김 변호사의 로비 명단 공개에 신경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들이 과연 삼성한테서 돈을 받았는지는 특검 수사에 의해 가려질 것이다. 하지만 이는 사법적 판단 이전의 문제다. 사제단과 김 변호사가 무슨 정치적 노림수가 있다고 국가의 중추기관을 맡고 있는 사람들을 일부러 흠집내려 하겠는가. 특히, 김 변호사가 그들과의 ‘인간적인 인연’을 끊어가면서까지 굳이 없는 말을 지어냈으리라고 상상하기 힘들다.

김 내정자와 이 수석은 더 늦기 전에 사제단의 고뇌와 충정을 이해하고 공직을 거절하거나 사퇴하는 게 사는 길이다. 설사 사법적으로 문제가 안 된다고 해서 실체적 진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계속 버틴다면 길어야 2년 정도 힘 있는 자리에 앉아 권력을 누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것은 본인뿐 아니라 이명박 정부에도 전혀 득 될 게 없다.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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