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3.04 19:47
수정 : 2008.03.04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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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호/남북관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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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프리즘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최영미·선운사에서)
고창 선운사 동백꽃은 2월 말부터 봉오리를 맺기 시작한다고 한다. 4월 초까지 만개한다니 지금이 철이다. 동백꽃 피는 건 못 보고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노무현 정부의 퇴장을 보다 이런 생각을 했다. 참 망가지는 건 잠깐이구나. 잘하기는 또 얼마나 어려운가. 본질은 인사 검증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다. 이명박 정부 사람들에게 지금의 인사기준은 너무 버거웠다. 앞으로도 사람 구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비판하기는 쉽다. 책임을 나누는 일은 어렵다. 비판하는 이들도 이 정부가 잘할 수 있도록 만드는 책임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부도덕하다고 몰매를 주는 건 자제하고 싶다. 무엇보다 5년이란 긴 시간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솔직히 미덥지가 않다. 이명박 호는 출범하자마자 경제위기의 격랑 앞에 흔들리고 있다. 미국은 이미 금융위기가 실물 경제의 침체와 위기로 번지는 양상이다. 한국 경제도 위태롭다. 새해 벽두부터 저성장, 고물가에 이어 1월 경상수지는 1997년 환란 수준의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경제 살리기란 말에 기대기엔 현실이 너무 냉혹하다.
그런 점에서 취임식에 즈음해 이명박 대통령을 인터뷰하면서 이 대통령을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에 비유한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의 지적이 정곡을 찌른다. “이 대통령은 지금까지 모든 큰 싸움에서 승리했지만, 그의 가장 어려운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된 것이다.” 그렇다면 취임사와 3·1절 기념사는 일종의 출사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실용의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그 내용을 종잡을 수가 없다. 모든 게 달라졌는데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모든 게 달라진 것 같기도 하다. 헷갈린다.
3·1절 기념사에서 이 대통령은 과거에 얽매이기보다 국익에 부합하는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말했다. 취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노 대통령도 취임식에 온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과거에 발목이 잡혀선 안 되며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 총리가 다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다면, 일본이 ‘다케시마’(독도)는 일본 영토라며 해저탐사 측량선을 보내 조사하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 상황에서도 ‘미래지향의 실용적 자세’만을 외칠 것인가? 이 대통령이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게 실용이다. 노무현 정부의 외교정책 기조가 균형적 실용외교였다. 뭐가 다른가? 굳이 말한다면 한-미 동맹 중시의 실용외교인가? 아니면 불균형적 실용외교인가? 동맹을 강조하다 실용을 놓칠 수도 있는데 그때는 동맹이 먼저인가, 실용이 먼저인가?
이 대통령은 “아직까지 뚜렷한 대북정책을 밝히지 않고 있다”는 총련 기관지 <조선신보>의 지적처럼, 대북정책도 실용으로 포장된 채 실체가 모호하다. 그래서 혼란스럽다. 참여정부 첫 외교장관을 지낸 윤영관 서울대 교수(외교학과)의 말은 귀담아들을 만하다. 그는 지난달 한 강연에서 “북핵에 관한 한 새 정부의 정책 선택 폭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2·13 합의 이후 북핵 문제에 협력한다는 대전제하에 6자 회담 참여 5개국이 북한을 포용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그 틀 안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의 말대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는 바꿔치워야 할 것이 아니라 업그레이드해야 할 대상”이다.
강태호/남북관계 전문기자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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