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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2.28 21:39 수정 : 2008.02.28 21:39

정세라/사회정책팀 기자

한겨레프리즘

‘이명박 정부’ 장관 후보들의 ‘의혹’ 행진이 점입가경이다. 세 후보의 낙마 과정을 지켜보고 나니, 웬만한 흠집은 놀랍지도 않다. 모조리 사퇴시킬 수도 없으니, 눈 딱 감고 ‘대사면’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농담도 흘러다닌다.

인사청문회가 ‘도덕성 검증’에 흐르다 보니 정책적 소신을 살피는 일은 관심이 떨어진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완화’ 추진을 둘러싸고 여당 의원과 정부 각료 후보가 불협화음을 빚은 것이다. 당연지정제는 모든 의료기관이 건강보험 환자를 거절할 수 없도록 한 제도다. 덕분에 환자가 어떤 병원에 가든 건강보험 진료를 요구할 수 있다.

김성이 보건복지가족부 장관 후보는 인사청문회장에서 당연지정제 완화 추진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당연지정제 완화는 나름대로 장점도 있다”며 “공론화를 통해서 이 문제를 심각하게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화들짝 놀란 전재희 한나라당 의원이 질의 순서를 바꿔가며 진화에 나섰다. 전 의원은 “완화하면 돈을 잘 벌고 환자가 모이는 병원이 건강보험을 기피하게 된다”며 “한나라당은 절대로 완화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건강보험 아래서 병의원은 환자한테 돈을 맘대로 받기가 어렵다. 낡고 허름한 지방 소도시 의원이든, 화려하게 치장한 서울 강남 쪽 의원이든 감기로 똑같은 ‘주사 한 방’을 썼다면 같은 진료비를 청구해야 한다. 건강보험이 주사 한 방의 값으로 ‘의료수가’를 정해놨고, 환자가 건강보험을 적용해 달라면 거절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대한의사협회 등은 불만이 많다. 더 많은 돈을 내도 질좋은 의료 서비스를 받고 싶어하는 환자들이 있는데, 건강보험이 걸림돌이라고 한다. 민간 의료보험과 손잡고 고급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병원을 키우고 고용도 늘려갈 ‘의료 산업화’를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현행 건강보험은 보장성 확대와 재정 안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어려운 형편이다. 하지만 건강보험을 뼈대로 한 우리 의료 시스템이 민간 의료보험이 주된 미국보다 비용 대비 효과적인 의료보장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건강보험을 뿌리째 흔들 당연지정제 완화는 총선 쟁점도 될 만한 민감한 이슈다.

여당 의원이 제지에 나서자 장관 후보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처음에는 “국외로 나가는 환자를 잡거나 외국 환자를 유치해야 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당연지정제를 손봐야 고급의료 서비스를 키울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전 의원은 완화 철회를 다그쳤고, 김 후보는 “동의한다”며 물러섰다. 결국 ‘공부를 덜 한 것 같다’는 핀잔까지 받고서야 “더 노력해야 할 부분”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후로도 “자유경쟁 체제로의 변화 준비”를 덧붙였다가, 질책을 받으면 “예”라고 한발 빼는 촌극이 이어졌다. 야당 의원으로부터 “도대체 어느 쪽 ‘예’인지 분명히 하라”는 면박을 들었을 정도다.

당연지정제 완화는 새 정부가 국정과제로 ‘지속 가능한 의료보장 구축’과 ‘의료산업 육성’을 내세웠기에 끊임없이 고개를 드는 주장이다. 그래서 김 후보의 말이 새 정부 각료로서 소신있는 속내인지, ‘시장’ ‘경쟁’ 분위기에 장단을 맞추려다 빚어진 실수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앞이라면 소신을 바로 뒤집을 만큼 최소한의 줏대도 없는 셈이고, 뒤라면 새 정부 인선론의 핵심이었던 ‘능력 우선’을 의심케 한다. 이나저나 ‘어설픈 소신’에 건강권을 내맡길 국민만 불안하다.

정세라 사회정책팀 기자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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