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2.21 19:57
수정 : 2008.02.21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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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수/온라인 영문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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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프리즘
대선에서 당선된 뒤 승승장구하던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앞길에 비상등이 켜졌다. 취임도 하기 전에 지지도가 50%로 주저앉은 것이다. 이는 역대 대통령 당선인들이 비슷한 시점에서 70∼80%대의 높은 지지율을 보였던 것에 견줘 크게 낮은 수치다.
최근 노무현이나 이명박이나 비슷하다는 것을 뜻하는 ‘노명박’이라는 신조어가 나도는 것은 이 당선인에 실망한 민심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고압적인 태도와 꼬리를 물고 이어졌던 정책 혼선과 실수도 부정적 인식을 키웠다. 4월 총선을 앞두고 200석 이상을 공언하던 한나라당 안에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것도 이런 현상의 반영이다.
이런 난기류는 이 당선인이 자초한 면이 크다. 참모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매사를 자기 판단대로 밀어붙이는 ‘불도저식 인사’가 대표적인 예다. 최근 정부조직법 개정을 둘러싼 여야의 견해 차이로 정국을 소용돌이로 빠뜨렸던 새 내각 명단의 일방적 발표 소동도 따지고 보면 이 당선인의 독선과 아집에서 나왔다. 그의 밀어붙이기 명단 발표에는 ‘내 생각만 옳고 다른 사람의 생각은 모두 잘못됐다’는 독선과 아집이 드리워져 있다. 그의 작은 정부론도 논란의 대상이다. 작은 정부의 목표를 정부 부처 축소라는 협소한 관점에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원화한 사회구조는 정부 기능의 다원화를 요구한다.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정부 부처 수 줄이기에만 매달릴 경우 정부 기능의 후퇴라는 역효과를 낳기 쉽다. 비대해진 공무원 수를 대폭 줄이는 것이 더욱 시급한 일이다. 이 당선인이 정부 개혁의 모델로 삼고 있는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의 작은 정부도 정부 부처의 뼈대는 손대지 않고 공무원 수 감축 조정을 통해 이뤄졌다.
정치학자들은 대통령의 성공 조건으로, 유능한 비서실장 발탁과 관료사회 장악이라는 두 가지 점을 꼽는다. 이런 점에서 이 당선인이 현실감이 무딘 학자들을 청와대 수석비서관과 내각에 대거 발탁한 것은 좋지 않은 징후다. 김영삼 정권 초기의 국정 혼란도 행정경험이 없는 학자 출신들을 외무부·통일부·안기부 등 주요 부서에 대거 기용한 데 따른 것이었다. 이 당선인이 당선된 지 40일이 지나서야 지리학을 전공한 학자를 청와대 비서실장에 발탁한 것은 그가 참모의 보좌기능을 경시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재의 내각 및 청와대 비서실 진용대로라면 이명박 정권은 대통령의 독주체제가 될 공산이 높다. 업무에 익숙해지는 데만 최소한 1년이 걸리는 학자 출신 장관과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이 정권 출범 초기에 대통령을 효율적으로 보좌할 것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 생각과 다른 견해에 대해 생리적 거부감을 보인다는 이 당선인이 주요 직책에 충성심이 강하고 개인적 연고가 있는 인물들 위주로 기용한 것도 이명박 정부가 대통령 일인 체제가 될 것임을 예고한다. 이런 진용은 홀로 뛰는 대통령의 ‘치어 리더’로 전락할 소지가 다분하다. 사실상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지 자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제왕적 대통령 밑에서 어느 누가 나서 용기 있게 직언을 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최대의 대선 공약이었던 대운하 강행 여부가 이명박 정권의 진운을 결정하게 될 첫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귀를 막고 자기 말만 하는 대통령이 혼자 뛸 때 국정이 어떻게 파탄에 이르게 되는지는 국민의 뜨거운 환호 속에서 출발했던 김영삼 정권과 노무현 정권의 말로를 되돌아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장정수/온라인 영문판 편집장
jsj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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