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복기/노드콘텐츠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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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프리즘
큰 사건에서 시대상을 반영하는 상징을 느낄 때가 있다. 숭례문 화재와 태안 기름오염 사태가 그렇다. 숭례는 예(禮)를 숭상한다는 뜻이다. 조선은 한양에 궁궐을 세울 때 유교에서 사람이 늘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도리인 오상의 인의예지신 가운데 넉 자를 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홍지문 등 사대문 이름에 쓰고, 믿을 신자는 도성 한복판에 세운 보신각에 썼다. 그 가운데 ‘예’가 불탔다. 예는 사양지심으로 자신을 낮춰 양보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다. 숭례문은 그런 정신이 담긴 상징물이다. 관악산에서 뻗쳐 나오는 화기를 화기로 다스리기 위해 오상 가운데 오행의 화에 해당하는 예자를 남쪽 성문에 썼다지만, 도성의 정문이자 교통의 요충지인 남문이 숭례문이 된 것은 풍수에 따른 배치만은 아닐 듯싶다. 동방예의지국으로 일컬어지던 나라였기에 일제가 마구잡이로 갖다붙였다고는 하지만 숭례문이 국보 1호가 되어 수도 서울을 대표하는 문화적 아이콘이 된 게 아닐까. 그런 정신적, 문화적 으뜸 아이콘이 신년 벽두에 그것도 새 대통령 취임을 코앞에 두고 불에 탔다. 예는 오행에 따르면 불이다. 오행은 우리 몸 안의 장부에도 적용된다. 불은 심장이다. 곧 예는 심장이다. 한의학에서 심장은 우리 몸 전체를 다스리는 군주에 비유된다. 또 양심을 뜻한다. 가슴에 손을 얹는다는 표현은 양심에 비춰 본다는 말이다. 심장이 약하면 희희낙락거리고 들뜨고 염치가 없어지게 된다. 지금 우리나라, 특히 정치판이 돌아가는 꼴을 보면 심장이 약해진 몸처럼 사양지심은 물론 염치와 양심마저 사라진 듯하다. 이명박 당선인과 한나라당은 틈만 나면 국민을 섬기겠다는 말을 되풀이하지만 행동은 그렇지 않다. 설익은 정책으로 국민을 깜짝 놀라게 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들떠서 벌이는 일이다. 이 당선인은 바로 몇 달 전에 밝힌 공약 가운데 일부를 은근슬쩍 폐기하고 있다. 최근 한나라당이 공천 기준을 둘러싸고 논란을 벌인 끝에 벌금형 전력자에도 공천 자격을 주기로 결정한 뒤 국민들은 그들이 외쳐 온 ‘클린 정치’의 진정성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통합민주당도 별반 다르지 않다. 대권 가능성을 좇아 명분 없이 탈당한 뒤 범여권 후보 경선에 참여한 이를 당 대표로 세워 선거 패배 수습에 나섰고, 특정 지역의 표를 의식해 합당을 했다. 앞으로 공천 후유증이 없을 리 없다. 숭례문의 심각한 손상은 이런 현실을 상징하는 게 아닐까. 예가 사라진 우리나라는 몸으로 보면 심장이 크게 약해진 것이다. 심장에는 쓴 음식이 약이다. ‘큰 몸’인 나라를 다스리는 대통령에게 쓴소리가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이명박 당선인은 쓴소리를 약으로 듣는 게 아니라 ‘반대를 위한 반대’로 규정하는 듯이 보인다.태안 기름오염 사건도 그렇다. 구멍이 난 배 이름은 ‘허베이 스피리트’. ‘스피리트’, 다시 말하면 정신에 구멍이 나서 기름이 펑펑 쏟아졌다. 구멍을 낸 것은 삼성중공업 크레인선이었다.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삼성의 비자금 조성과 전방위적인 로비 행태는 삼성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삼성은 우리에게 자긍심을 줬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의 정신과 영혼에 구멍을 내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태안 기름오염 사태는 숭례문 화재 못지않은 상징이다. 숭례문의 복원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예의를 알고 염치가 있는, 정신이 제대로 박힌 나라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먼저다. 맨 먼저 이명박 당선인이 이끌 차기 정부와 총선을 앞둔 정치권부터 그렇게 바뀌어야 한다. 늘 ‘윗물’의 탁함이 물을 흐려 온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숭례문을 제대로 복원하는 길이다. 권복기/노드콘텐츠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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