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1.24 19:57
수정 : 2008.01.24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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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수/ 온라인 영문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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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프리즘
우리 속담에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일이 급하다고 절차를 무시하고 서두르다 보면 실수를 범해 일 자체를 그르치기 쉽다. 반대로 여유를 갖고 냉정하게 대처하면 의외로 쉽게 해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최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눈부신 ‘활약상’을 보면서 이 속담을 떠올리게 된다. 질풍노도를 연상하게 하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숨가쁜 행보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의욕 과잉이 적잖은 부작용을 낳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 발표한 정책이 오늘 취소되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 심지어는 오전에 나온 정책이 오후에 취소되거나 발표 몇 시간 만에 번복되는 경우도 있다. 당연히 국민들은 헷갈린다. 불안감도 싹튼다. 집권 경험이 없었던 김대중·노무현 당선인 시절에도 이런 정도의 혼선은 없었다.
이러한 혼란은 일차적으로 인수위원회가 차분한 정권 인수 작업을 하기보다는, 분과별로 경쟁이라도 하듯 차기 정부의 정책 대안 제시에 집착하는 데서 비롯된다. 정권 인수의 핵심은 물러가는 정권이 추진했던 각종 정책에 대한 현황 파악에 있다. 정권교체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하고 정책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기존 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와 대안 마련은 집권한 이후에 새로 출범한 정부가 하는 것이 정도고 상식이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 나라들에서는 정권 인수 작업이 이런 방식으로 이뤄진다.
정책집행 권한과 능력을 갖추지 못한 인수위원회가 남발하는 각종 정책들은 이명박 차기 정권에 부메랑이 되어 날아오기 쉽다. 최근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던 보수층에서도 인수위원회의 조령모개식 정책 발표에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남북관계와 외교·경제·교육과 같은 중요한 분야에서 급조된 듯한 정책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과연 이명박 당선인 쪽이 국정운영에 필요한 청사진과 일정표를 가지고 있는지 의구심을 내보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인수위원회의 미숙함은 각종 주요 정책에서 균형 감각의 결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노무현 정권의 국정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은 또 하나의 극단적인 정책으로 흐를 염려가 있다. 인수위 관계자들이 남북관계와 외교 문제에서 보여주고 있는 극단적 한-미 동맹 노선은 극단적 자주 노선 못지않게 그 폐해가 심각할 것이다. 통일부 폐지로 상징되는 대북 포용정책의 포기는 북핵 문제를 다루는 6자 회담에서 한국의 고립을 부를지도 모른다. 또 한-미 동맹의 강화가 부시 정권과의 밀착 양상으로 진행되는 것이 과연 한국의 국익에 부합되는지도 의문이다. 부시 정권과 밀착하는 것은 미국 민주당이 집권할 경우 이명박 정권을 궁지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지혜로운 관계 설정이 필요하다. 외교 정책이야말로 실용주의적 접근이 필요한 분야다.
학부모와 수험생들에게 큰 피해가 돌아가는 입시제도의 급격한 궤도 변경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러한 혼선이 계속될 경우 이명박 정권은 출범도 하기 전에 큰 불신을 살 수 있다. 취임을 아직도 한 달여 남겨둔 시점이어서 사람들은 여전히 높은 기대감 속에서 초기의 시행착오에 관대하다. 하지만 취임하면 곧바로 사정이 달라진다. 문제는 이명박 당선인의 리더십으로 압축된다. 지도자의 필수적인 자질은 통합조정력과 위기관리 능력이다. 리더십 부재가 어떤 정치적 비극을 초래했는지는 노무현 정권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장정수/ 온라인 영문판 편집장
jsj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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