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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1.23 13:20 수정 : 2008.03.31 18:07

정석구/경제부문 선임기자

정석구 경제부문 선임기자

이명박 정부는 ‘기업정부’라는 이름을 붙일 만하다. 이 당선인의 이력과 친기업적인 그의 언행뿐 아니라, 최근 내놓은 정부조직 개편안 자체가 철저히 기업논리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정부’에서는 국가의 모든 역할이 기업 활동을 지원하는 것으로 바뀐다. 그동안 기업을 감시·감독했던 정부는 기업의 충실한 후견인임을 자임한다. 기업의 불공정 행위 등을 감시해야 하는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기업 감시와 감독을 사실상 포기하게 될 것이다. 국세청은 벌써부터 “기업들이 세금 문제에 신경 쓰지 않고 경영에 전념할 수 있도록” 기업 세무조사를 줄이겠다고 나섰다.

정부 조직도 기업 조직으로 바뀌고 있다. 인수위가 내놓은 정부조직 개편안을 보면, 청와대는 삼성의 전략기획실 같은 핵심 조직으로 바뀌고, 각 부처는 담당 분야에 따라 기업들의 사업본부처럼 만들어지고 있다.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기업 지원과 관계없는 여성부, 농촌진흥청 같은 정부 조직과 불필요한 공무원 중 상당수는 기업 구조조정 방식으로 정리될 예정이다.

기업 활동을 규제하는 모든 정책도 무력화되거나 없어진다. 재벌의 문어발 확장을 규제하는 출자총액 제한제 등은 폐지되고, 금산분리 정책도 허물어질 것이다. 대대적인 기업규제 완화도 예고돼 있다. 바야흐로 기업의, 기업에 의한, 기업을 위한 ‘기업정부’가 들어서는 것이다.

‘기업정부’는 약자인 개인의 이익보다 강자인 기업의 이익을 우선시한다. 그러면서 기업의 이익이 곧 국민의 이익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기업들이 수백조원의 이익 잉여금을 쌓아놓고 있음에도 대다수 국민의 삶은 갈수록 고단해지고 있다.

기업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비정규직 채용을 늘리고, 수시로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게 된다. ‘기업정부’는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이름 아래 이를 정책적으로 뒷받침해 줄 것이다. 노동자 권익을 위한 투쟁도 기업 이익과 상충되고 사회 안정을 해치는 행위로 간주된다.

‘기업정부’ 아래서는 활발한 대중 참여를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도 효율적인 기업 활동을 방해하는 거추장스런 가치일 뿐이다. 인권이나 환경·문화 같은 가치도 기업 이익에 반하면 언제든 묵살될 수 있다. 대운하가 환경을 파괴해 대재앙을 가져온다고 해도 건설회사에 이익만 된다면 서슴없이 이를 추진할 수 있는 게 ‘기업정부’다. 대운하를 ‘100% 민자로 추진하겠다’는 것은 ‘민간기업의 이익을 100% 보장해 주겠다’는 말과 같다.

기업은 도덕적인 기준이 아니라 이윤에 따라 작동한다. ‘기업정부’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의 교육이나 의료·복지 등 공공서비스는 ‘기업정부’가 하기에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일이다. 이런 공공서비스들도 점점 기업 손으로 넘겨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기업의 이익은 더 늘어나고, 사회적 약자들은 더 힘들어진다.


국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주는 기업을 정부가 지원하는 것 자체를 탓할 일은 아니다. 낭비 요소가 적잖았던 정부 조직을 작고 효율적인 조직으로 재정비하는 것도 필요하다. 사사건건 기업 활동에 간섭했던 ‘철밥통 공무원’을 깨부수겠다는 새 정부에 박수를 보낼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기업이 잘되는 것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사회 갈등의 조정자 구실을 해야 할 정부가 완벽하게 기업 편에 서는 것은 다른 문제다. ‘기업정부’ 아래서는 인간적인 삶보다는 기업 이익이 우선시되고, 민주적 가치가 훼손되며, 공동체가 파괴될 것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정부 수립 60년 만에 실질적으로 가장 큰 변화를 겪고 있다.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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