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1.10 18:23
수정 : 2008.01.14 15:09
|
강태호/남북관계 전문기자
|
한겨레프리즘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쪽은 북한이 핵을 폐기하는 전제조건만 충족한다면 400억달러에 이르는 국제적인 대북 협력기금을 마련해 과감한 지원에 나서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후보 시절 내놓은 대북정책의 핵심인 ‘비핵·개방 3000’ 공약을 보면 3이 많이 나온다. 300만달러 이상의 수출 기업, 산업인력 30만명 양성, 국민소득 3000달러 등등. 300억달러로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500억달러는 어떤가? 300억달러는 적고 500억달러는 많은 듯하니 400억달러로 한 것일까. 인수위의 외교·통일분야 업무보고를 보면서 든 엉뚱한 생각이다. 좋은 뜻을 탓할 생각은 없다. 다만 공허하다. 공약은 원래 빈 약속이라 치자. 그걸 앵무새처럼 업무보고에서 정책으로 제시한 두 부처가 안쓰럽다. 종이 위에 희망사항을 나열할 수는 있을 것이다.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은 지난 12월31일 종무식에서 “관료의 덕목은 약속이 아니고 실적이며, 슬로건이 아닌 해결책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겨듣길 바란다.
지금 북한 핵은 ‘불능화’의 불능화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비핵·개방 3000은 기본적으로 ‘핵 폐기 먼저’다. 이서도 안 된 정체불명의 400억달러 어음을 주면서 북한이 핵을 내놓을 것으로 보는 건 순진하다.
한-미 동맹 중시도 그렇다. 그건 5년 전 노무현 정부 출범 때 얘기다. 게다가 균열과 불협화음의 책임을 온전히 한국의 잘못으로 보는 건 잘못이다. 네오콘의 핵심으로 국방부 부장관을 지낸 폴 울포위츠 전 세계은행 총재는 이 당선인을 만난 뒤 국내 언론 대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북한 문제 해법에 대해선 두 나라 정부 사이 철학적인 시각차도 있었다. (중략)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실용적으로 접근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두 나라는 실용적으로 접근하고 서로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이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줬다.”
그의 말처럼 양국 불협화음의 핵심엔 북핵 문제가 있었다. 부시 1기는 핵문제를 두고 북한 정권교체라는 목표와 군사적 수단을 배제하지 않았다. 그러나 2기 들어 첫 정상회담이었던 2005년 6월 워싱턴 정상회담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은 외교적 해결로 선회했다. 그는 한-미 관계를 ‘매우 특별하고 굳건하며 중요한 전략적 동맹’으로 평가했다. 6자 회담이 재개돼 핵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잡은 건 이때부터다. 맹목적으로 동맹을 중시했다면 이 과정에서 한국의 중심적 역할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명박은 한-미 동맹 중시, 노무현은 한-미 동맹 경시와 같은 이분법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누구와 어떻게 협력할 것이냐다. 앞서 울포위츠는 한국 대선 결과에 대한 워싱턴의 견해를 묻자 “누구를 가리켜 워싱턴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워싱턴은 모두 아이오와에 가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은 곧 주인이 바뀐다. 부시하고만 잘 지내서 될 일이 아니다. 디제이도 클린턴과는 잘 지냈다.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동맹 중시를 외칠 때인지도 의문이다. 4일 <워싱턴 포스트> 사설은 북한이 신고 등 핵 불능화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음에도 부시 행정부가 ‘엄청난 인내심’을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대목도 있다. “미국 행정부 관리들은 전임 정권보다 더 강경한 정책을 취하는 새로 출범할 한국 정부와 중국 정부가 북한에 압력을 가하길 기대하고 있다.” 미국은 북핵 교착 국면에서 한국이 몽둥이를 들기를 바라고 있다. 자기는 좋은 경찰, 한국은 나쁜 경찰 하라는 것이다. 동맹 중시는 알아서 북한 팔을 비틀고 목을 조르겠다는 말로 들린다. 깊은 생각이 있기 바란다.
강태호/남북관계 전문기자
kankan1@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