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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1.08 18:55 수정 : 2008.01.08 19:27

정세라/사회정책팀 기자

한겨레프리즘

중국인 장아무개(32)씨는 산둥성에서 왔다. 천만원을 빚내 중개인한테 건네고 석 달짜리 비자를 얻었다. “몇 년만 일하면 중국에 돌아가 잘살 수 있다.” 흔하디흔한 ‘코리안 드림’이었다. 한국살이는 녹록지 않았다. 임금을 떼먹혔고, 한국말이 서툴러 쫓겨나기도 했다. 결국 빈손의 불법체류자가 됐다.

다행히 도장 하청업체에 취직을 했다. 몸은 페인트투성이에 고단했지만, 중국에 두고 온 세살배기 아들을 생각해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코리안 드림은 어이없이 무너졌다. 퇴근해 페인트를 지우느라 시너를 썼던 게 화근이었다. 휘발된 시너는 부엌의 가스레인지 불꽃에 점화돼 순식간에 장씨를 삼켰다. 지난해 10월, 장씨는 입국 반 년 만에 온몸 70%에 화상을 입었다. 불법체류였으니 건강보험도 없었다. 사고 석 달 만인 지난 5일 퇴원을 할 때 병원비는 3100만원이나 됐다. 피부 이식이 필요하다지만, 3천만원이 더 든다는 얘기에 눈만 껌벅였다. 일을 할 수도 없는 그는 쪽방에 누워 불법체류자인 아내가 직장에서 돌아오기만 기다린다.

경기도 이천시 냉동창고 화재에서도 이주노동자들의 가슴 아픈 사연이 잇따랐다. 사망·부상자 57명 가운데 15명이 재중동포거나 외국인이다. 이들은 새벽 인력시장 등을 통해 열악한 일용직에 나섰다가 참변을 당했다. 이들 상당수는 불법체류 신분일 공산도 크다.

40만 이주노동자가 없으면 산업 현장이 돌아가지 않는 시대다. 위험하고 궂은 일이 많은 중소 제조업은 이들 없이는 공장을 못 돌린다. 맞벌이 부부의 아이를 키워주는 것도 이들이고, 식당에서 음식을 나르는 것도 이들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이주노동자를 필요로 하면서도 이들을 건강과 생명의 안전선 밖에 손쉽게 방치한다. 등록 노동자에게도 건강보험의 문턱은 높고, 미등록 노동자는 사각지대에 방치된다. 그나마 한 귀퉁이 무상 의료는 재정난에 허덕이기 일쑤다.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이주노동자의 직장 건강보험 가입률은 60%에 불과하다. 영세 사업주들은 보험료 분담이 버거워 좀체 보험을 들어주지 않는다. 재중동포는 방문취업 비자로 들어오면 지역 가입자가 되지만, 대부분 이를 포기한다. 백만원 남짓한 수입에 매달 5만원대의 보험료는 힘에 겹기만 하다. 재중동포는 재산·소득 추정이 어려워 국내 지역 가입자의 평균치로 보험료가 책정된다. 이들에게는 너무도 높은 문턱이다.

20만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사정은 더 열악하다. 이들은 애초 건강보험 가입도 할 수 없다. 아파도 참거나 비싼 진료비를 물어야 한다. 보건복지부의 ‘외국인 근로자 등 소외계층 의료비 지원사업’은 마지막 비상구다. 체류 자격을 묻지 않고 무상 진료를 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업은 지난해에도 두달 반 동안 중단됐다. 복권기금으로 48억원의 사업비가 배정됐지만 2천여명을 지원한 뒤 재정이 바닥났기 때문이다. 올해는 복권기금 사업에서도 탈락해 일반 예산으로 사업이 넘어왔다. 복지부는 무상 진료를 접고 본인부담금을 신설하는 문제를 고심 중이다.


겨울이면 이주노동자들이 화상 등으로 크게 다치는 일이 잦다. 미등록 신분 때문에 도시가스 연결을 못하고 부탄가스 등을 쓰다가 화재 같은 응급 상황을 당하는 일이 흔한 탓이다. 이천 화재 사건처럼 산재 처리라도 할 수 있으면 다행이다. 하지만 다른 사고에선 빚과 망가진 몸만 남는다. 스산한 겨울, 위험한 일터와 허술한 쪽방에 맨몸을 저당잡힌 코리안 드림의 주인공들은 ‘오늘도 무사히’라는 주문만 중얼거릴 따름이다.

정세라/사회정책팀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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