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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1.01 17:59 수정 : 2008.01.02 09:53

장정수/온라인 영문판 편집장

한겨레프리즘

승리만이 빛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당당하고 아름다운 패배가 감동을 주기도 한다. 원칙과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 강직하게 책임을 질 줄 아는 지도자에게 사람들은 찬사를 보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 후보에서 패했을 때 그 책임을 지고 정계은퇴를 선언하자 지지자들은 물론 비판자들도 박수를 보냈다. 그의 의연한 행보가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김 전 대통령의 재기는 이에 감동했던 지지자들의 변함없는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대선이 끝난 지 2주일이 다 돼 가도록 대통합민주신당이 여전히 패배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참패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는 높지만 책임을 지겠다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수습 국면을 주도할 수 있는 지도부도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 상대방에게 손가락질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네 탓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사정도 비슷하다. 패배 수습방안을 놓고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자주파와 평등파가 정면으로 대립하고 있다. 이같은 양상들은 진보진영이 과연 현재의 위기 국면을 타개해 나갈 수 있는 리더십과 자기정화 능력을 갖고 있는지 의심하게 만든다.

대통합민주신당이 겪고 있는 혼돈의 일차적 책임은 말할 것도 없이 패배의 당사자인 정동영 전 의장에게 있다. 그는 대선 3일 뒤 전주의 한 모임에서 “큰 뜻을 이루려는 내 꿈은 쉼없이 커질 것”이라고 대권에 대한 강한 집념을 드러냈다. 참담한 패배를 겪은 정치지도자의 발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이상한 행보가 아닐 수 없다. 정 전 의장은 대선 참패가 노무현 대통령 때문이라고 항변하고 싶을지 모른다. 사실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유권자들의 분노가 530만표 차라는 참패의 결과로 나타난 것은 부인하기 힘들다. 그러나 대선 후보는 노 대통령이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이었다. 그가 진정 재기를 꿈꾼다면 당당하게 패배의 책임을 지고 이를 행동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것은 대선 참패 이후 답답한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 600만 지지자들을 위한 해원의 과정이기도 하다.

대통합민주신당의 실력자들도 패배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반성이 말잔치로만 끝날 때 공허하다. 책임지는 모습이 요구된다. 행동 없는 책임은 위선이 아니면 기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 누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 대선의 참패가 노무현 정권과 대통합민주신당 전체에 대한 심판의 성격이라고 할 때 그 책임 추궁의 대상은 당연히 노 대통령과 정 전 의장, 당의 지도급 인사들, 그리고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보좌했던 인물들이 될 수밖에 없다. 이들이 진심으로 대선 패배의 책임을 통감한다면 자발적으로 정계 은퇴나 2선 후퇴, 총선 출마 포기와 같은 행동을 통해 당의 이미지 쇄신에 기여해야 한다고 본다. 특히 노 대통령의 취임 초기 민주당의 분당사태를 주도했던, 이른바 ‘천·신·정’(천정배, 신기남, 정동영)으로 불렸던 당시 실세들과 각종 비리 사건에 연루됐던 인물들은 그 책임이 보다 무겁다고 할 수 있다. 대선 국면에서 합류한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도 대선 패배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 비서실에서 몸담았던 인사들이 총선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는 모습은 노 정권 인사들의 정국 인식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신당이 인적 쇄신이라는 자기정화 작업을 완수하지 못할 경우 유권자들은 4월의 총선 심판을 통해서 이를 관철하려 할 것이다. 이는 개혁진보 진영의 비극이다.

장정수/온라인 영문판 편집장 jsj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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