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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2.27 18:55 수정 : 2007.12.28 14:24

[한겨레 프리즘] 보수의 또다른 이름 ‘실용’
명분중시 한국사회에 유용, 반면 민주적가치 훼손
부동산·기업규제 완화로 서민들 설자리 더 좁아져

바야흐로 실용주의 시대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시대가 열리며 실용주의가 어느덧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이 돼 버린 것 같다.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태동한 실용주의가 우리나라에서도 뒤늦게 꽃을 피우고 있는 듯하다.

실용주의는 말 그대로 실제 생활에 유용한 것을 추구하는 사고방식이다. 말보다 행동을 중시하고, 모든 행동의 옳고 그름을 실생활에 유용하냐의 여부에 따라 판단한다. 명분을 특히 중시하는 우리에게는 그야말로 유용한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용주의를 잘못 채용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클 수도 있다. 모든 판단의 기준을 ‘실용’에 둠으로써 우리 사회가 갖춰야 할 중요한 가치들을 무너뜨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는 이명박 당선자의 첫 인사였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 임명에서 현실로 드러났다. 이 당선자는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에 협조했던 이경숙 숙대 총장의 전력을 깃털 하나의 무게만큼으로도 여기지 않고 가볍게 날려 버렸다. “네 차례나 총장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는데, 그게 무슨 흠이냐?”

이번 사건이 주는 교훈은 명백하다. 과거 전력은 다 덮어놓고, 도덕성 같은 거 따지지 말고 능력을 갖춰라! 부동산 투기를 해서 치부를 했건, 위장전입 경력이 있건, 음주운전 사고를 냈건, 능력만 검증되면 성공할 수 있다! ‘이명박과 함께하는 국민성공 시대’의 비결을 국민들에게 정확히 가르쳐 준 셈이다.


실용주의의 문제는 역설적으로 결과를 중시함으로써 발생하기도 한다. 결과만 중시하다보면 과정이나 절차가 무시된다. 중론을 모아 합의를 도출해 나가는 민주적 가치가 훼손되는 것이다. 자칫 독선으로 흐를 수도 있다. 이경숙 총장을 인수위원장으로 선임하는 과정에서 내부 반발이 있었지만 이 당선자는 이를 무시했다. 이것이 강력한 리더십으로 포장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것이다.

실적 달성에 치중하는 실용주의는 부작용이 따르게 마련이다. 이 당선자의 최대 목표는 경제 살리기다. 이 당선자가 공약한 7% 성장을 이루기 위해 가장 쉬운 방식은 기업 규제를 완화하고 건설 경기를 살리는 것이다. 이미 부동산 규제 완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되면, 성장은 이룰 수 있을지 모르지만 부동산 투기 재연과 물가 상승 등으로 서민들은 더 큰 고통 속에 빠질 수 있다. 서민·중산층의 설 자리는 점점 더 좁아지게 되는 것이다.

교육정책도 마찬가지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해야 한다”며 자율형 사립고 100개를 만들면, 공교육 붕괴는 불을 보듯 뻔하다. 외신에 의해 ‘불도저 상’까지 받은 데서 알 수 있듯 이 당선자는 많은 부작용을 감수하면서 이런 정책들을 과감히 밀어붙일 수 있는 사람이다. ‘실용’이라는 명분 아래.

이명박식 실용주의는 보수의 또다른 이름이다. 이 당선자는 좌든 우든 현실에 유용한 정책이면 모두 받아들이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보수 색채를 강화하고 있다. 규제 완화, 감세, 작은 정부, 민영화 등 대부분의 정책들은 보수파의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정책들이다. 그런데도 이를 ‘실용’이라고 포장해 국민들을 탈이념화시키려 한다.

실용주의 나라인 미국에는 약자에 대한 배려, 공정한 경쟁 규칙, 합리성, 투명성, 정직과 신뢰 등 다수의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사회적 가치가 존재한다. 이러한 사회적 가치들이 전제되지 않는 실용주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결과만을 추구하는 사이비 실용주의일 뿐이다. ‘실용’과 동시에 기본적인 사회적 가치를 세우고 지켜나가는 진짜 실용주의를 보고 싶다.

정석구/경제부문 선임기자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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