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복기/공동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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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프리즘
진보 진영은 참패했다. ‘국민성공 시대’에 표를 던진 이들 가운데는 서민과 중산층이 적지 않다. 평등과 분배에 목마른 이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등을 돌렸다. 원인의 하나는 집권 여당이 자신이 내세운 가치를 구현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억울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많은 유권자들이 10년 동안 지켜본 뒤 내린 결정이다. 다른 하나는 국민에 대한 무시다. 나는 이 점이 더 크다고 본다. 그럼에도 집권 여당이 선거 기간 보여준 태도는 반성보다 분함을 삭이는 듯했다. 국민들이 제정신이 아니라거나 배금주의에 빠졌다는 말이야말로 ‘정신 나간’ 발언이다. 많은 이들이 2004년 총선 때 집권 여당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그러던 이들이 배금주의에 미혹됐다면 그 책임은 정부와 국회를 장악한 이들에게 있다. 진보를 내걸고 평등과 분배를 외쳤지만 참여정부의 정책은 그렇지 못했다. 천천히 해도 될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목을 맸다. 비정규직을 보호한다고 만든 비정규직법이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있다. 부동산은 반드시 잡겠다는 약속을 믿고 집 사는 것을 잠시 뒤로 미룬 참여정부 지지자들은 뒤통수를 세게 맞고 집 사는 꿈을 버려야 했다. 교육 당국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을 하나의 잣대로 줄세웠고, 그 결과 입시교육은 사교육이 성패를 가르는 약육강식의 정글이 됐다. 학력차별은 대학입시 때 고등학교에 대한 차별로까지 확대됐다. 대형마트가 방방곡곡에 세워져 재래시장과 작은 슈퍼마켓들을 존폐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 이른바 진보와 개혁을 내건 정부 아래서 가속화한 일이다. 정부는 경제성장률 지표를 들지만 성장의 열매는 소수의 것이었다. 진보를 내건 정부 아래서 국민들은 야수보다 더한 경쟁에 내몰렸고 우리 사회의 야만성은 더욱 높아졌다. 그런 나라에서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국민들은 춥고 아프다고 호소했다. 여러 차례 선거를 통해 경고도 했다. 하지만 공허한 메아리에 그쳤다. 집권 여당은 이런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대신 자신들의 진정성을 몰라준다며 도리어 국민들을 꾸짖었다. 무시하고 모욕했다.진보는 그런 게 아니다. 진보는 독선이 아니다. 엄숙하거나 무겁지 않다. 즐겁고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그런 길에 함께하자고 내미는 손은 따뜻하다. 그래서 상대방을 설득하고 기다려줄 수 있다. 참여정부는 그러지 못했다. 진보라는 말만 무성했지 실천은 부족했다. 마음은 강퍅했다. 이번 선거에서 정치권 밖의 진보 세력도 패배했다. 어느 순간 시민사회 안에서는 현 정부에 대한 날선 비판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정부와의 ‘거버넌스’를 얘기하며 혹시 권력의 단맛을 나눈 것은 아닌지. 아니면 자신들이 곧 대중이라며 민심을 독점해 정부와 소통한 것은 아닌지. 특히 삼성의 전방위 로비 사건에 대한 일부 시민단체들의 미온적인 대응을 보면서 불안하기조차 하다. 요즈음 잠시 이 땅에 진보가 사라진 듯한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다시 진보를 이야기하자. 진보의 당위보다 즐거움을 나누자.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진보를 찾아내고 실천하자. 아이를 함께 키우는 즐거움, 도심의 텃밭에서 흙을 만지며 사는 즐거움, 깨끗한 먹을거리를 통해 몸이 건강하고 환경과 농촌을 살리는 즐거움, 정직한 기업을 키우는 즐거움, 나눔을 통해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즐거움 등. 이 아침 다시 희망을 본다. 좀더 나은 사회를 꿈꾸는 이들이 할 일은 너무 많다. 패배는 그래서 또다른 희망의 씨앗이다. 권복기/공동체팀장 bokk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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