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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1.27 18:14 수정 : 2007.11.27 18:14

권복기/공동체팀장

한겨레프리즘

어제 모처럼 유권자의 눈으로 신문 정치면을 꼼꼼히 봤다. 공식 선거운동을 시작하며 후보들이 내건 구호와 출사표에 그들이 그리는 우리나라의 미래상이 있을 것이었다.

실망스러웠다. 후보들이 내건 구호는 ‘가족행복시대’, ‘국민성공시대’, ‘국민이 행복한 나라’, ‘반듯한 나라’, ‘깨끗하고 따뜻한 번영’, ‘세상을 바꾸는 대통령’ 등이었다. 비슷했다. 구호만으로 앞으로 어떤 나라에 살게 될지 알 수가 없었다.

좀더 깊이 ‘공부’하기로 했다. 출사표를 읽고 인터넷 등을 통해 공약을 훑어봤다. 표현만 다를 뿐 후보들의 공약에 큰 차이는 없었다.

공통점은 금세 눈에 들어왔다. 후보들 공약의 열쇳말은 모두 돈이었다. 행복·성공·따뜻한 번영의 조건은 모두 돈이었다. 세상을 바꾸려는 이유도 돈의 분배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였다. 공약은 ‘돈을 많이 벌어 국민들의 주머니가 두둑해지는 나라를 만들겠다’로 요약됐다. 누가 돈을 벌게 할 것인가와 번 돈을 어떻게 나눌지에 대해서만 생각이 조금씩 다를 뿐이었다.

돈이 많아서 나쁠 것은 없다. 하지만 돈만 많으면 행복한가. 얼마나 돈을 많이 가져야 행복한 가족이 되고 성공하는 국민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우리 사회 전체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으려 했던 삼성의 행태를 보면 재력이 행복이나 성공과 반드시 비례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대부분 후보의 공약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가 당신에게 더 많은 돈을 줄 수 있다’고만 외치는 듯하다.

후보들 모두 철학이 빈곤해 보인다. 세상을 보는 눈이 너무 좁다. 좁은 눈에는 국민들의 요구가 ‘부자 만들어 주세요’뿐인 것으로 보인다. 공약도 그에 따라간다. 당연히 대한민국의 미래상에는 관심도 없다. 지금 이 순간 유권자의 요구에 즉자적으로 반응할 뿐이다. 그런 철학의 부재는 ‘부자되는 국민’과 ‘성공하세요’가 등장하는 플래카드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후보들에게 반세기 전 김구 선생이 쓴 글 ‘내가 원하는 나라’를 읽어보기를 간곡히 권한다. 깊은 철학을 담고 있지만 아주 쉽고 구체적이다. 그리고 감동적이다. 김구 선생의 글에는 놀랍게도 지금 우리 나라가 직면한 양극화 문제나 부패 문제에 대한 근본 해법이 담겨 있다.

대통령 후보라면 이 정도의 철학과 비전은 갖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자신만, 자기 가족만, 자기 조직만, 자기 지역만, 자기 나라만 우선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오, 경제력도 아니다 ….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 마음만 발달이 되면 현재의 물질력으로 20억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이 아침, 김구 선생이 너무 그립다.

권복기/공동체팀장 bokk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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