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1.08 17:47
수정 : 2007.11.08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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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수/온라인 영문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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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프리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대선 출마 선언에 따른 대선지형의 급변은 절망적 상태에 빠져 있던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에게는 한 가닥 희망을 불어넣었다.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이명박 대세론에 구멍이 뚫렸기 때문이다. 역대 대선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최대 변수가 선거구도였다는 점을 상기하면, 보수권의 분열은 정 후보에게 고무적이다. 실제 김영삼과 김대중, 정주영이 대결했던 1992년 대선을 빼고는 87년, 97년, 2002년 대선 모두 분열한 쪽이 여야를 막론하고 패배했다.
이회창씨의 출마로 촉발된 ‘보수 내전’은 연쇄반응을 일으키면서 대선의 양상을 뒤바꿔 놓았다. 최대의 변화는 대선 구도가 양자 대결구도에서 3자 대결구도로 바뀜으로써 어느 후보가 고정 지지층을 많이 확보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게 됐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각 후보는 노선과 정체성을 더욱 선명히함으로써 고정 지지층 확대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으로 한국의 지지계층은 보수와 진보가 팽팽하게 양분돼 있어, 20%에 이르는 중간층의 향배가 승부를 갈랐다. 이렇게 볼 때 다자 구도로 치러지는 선거에서는 분열하는 쪽이 지고 단결하는 쪽이 이길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번의 대선 판도 변화가 정 후보의 열세 반전을 자동적으로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이회창 전 총재의 대선출마 선언 이후 정 후보의 지지도는 여전히 10%대에 머물고 있다. 정 후보의 부진을 그의 정치적 역량 부족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정 후보의 선거 메시지가 불분명하고 산만한 느낌을 주고 있어 정치적 흡인력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본질적인 이유는 노무현 정권과 개혁진보 진영에게서 등을 돌린 지지층을 재결집시킬 수 없을 정도로 지지층의 붕괴와 민심이반이 심각한 데 있다.
따라서 정 후보가 풀어야 할 최우선 과제는 ‘잃어버린 지지층’을 되찾는 일이다. 지지층의 복원 문제는 대선의 선거전략 차원을 넘어서 사회전반의 보수화 광풍 속에서 개혁진보 진영 전체의 운명을 좌우할 사활적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탈한 지지층을 돌려세우는 일은 모호한 중도노선을 과감히 포기하고 선명한 개혁진보 노선의 재정립과 개혁진보 진영의 연대로 집약된다. 이 과제는 정치성 구호로는 결코 실현될 수 없다. 구체적인 행동이 뒷받침될 때 분열된 개혁진보 세력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다. 반부패 연대를 주창하면서 삼성그룹의 차명계좌 비자금 의혹과 연세대 편입 비리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보이거나 침묵하는 모습은 그 진정성에 대해 의구심을 품게 만든다.
최근 불거진 이 두 의혹은 한국의 사회정의가 보수지배 엘리트들에 의해 어떻게 짓밟히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정 후보가 이 사안을 비켜갈 경우 개혁진보 진영의 연대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없음은 물론이다.
후보 단일화 또는 정책연합 등의 연대도 마찬가지다. 말만으로는 실현이 불가능하다. 개혁진보 진영의 구심점으로서 대국적 리더십과 포용력을 갖춘 정치 지도자다운 헌신과 자기 희생이 정 후보에게 요구된다.
반면에 정 후보가 차기 총선의 자파 공천권 지분 같은 실리적 정치타산에 집착하는 것으로 비칠 경우 개혁진보 진영의 연대는커녕 당 내부의 대동단결도 불가능하다. 정 후보가 차기 총선에 일체 간여하지 않겠다는 대국민 선언 등과 같이 대통령직을 빼고는 모든 것을 던질 각오가 돼 있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정 후보의 기사회생 여부는 바로 ‘정동영의 선택’에 달렸다.
장정수/온라인 영문판 편집장
jsj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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