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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구/경제부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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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프리즘
진실이 드러나길 두려워하는 세력들이 있다. 그들은 외부와 차단된 자신들만의 은밀한 ‘왕국’을 꾸린다. 그 안에서 그들만의 특권을 누리며 일반 사회와 완벽히 차별화한다. 외부인들이 그 실체를 드러내려 하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필사적으로 저항한다. 그런 세력의 한가운데 ‘삼성’, 정확히 말하면 삼성그룹을 총괄 조정하는 전략기획실의 핵심 조직이 있다. 이 조직은 막강한 금권을 이용해 우리 사회의 힘있는 지도층을 자신의 ‘우호세력’으로 만들어 간다. 이제 그 왕국은 국가기관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굳건해졌고, 대를 이어 계승할 터전을 마련해 가고 있다. 삼성이 이처럼 강고한 왕국을 만들어가는 데 공조하거나 방조하는 집단은 광범위하다. 정치권이나 행정·사법부, 언론 등 우리 사회의 지도층이 망라된다. 이번에 그 왕국의 은밀한 내부가 드러나려 하자 삼성의 우호세력들이 그 실체를 드러냈다. ‘판도라의 상자’를 닫으려고 발벗고 나섰다. 현직 장관이 나서는가 하면, 어느 재야 인사는 자신도 삼성의 ‘관리 대상’이었음을 고백하기도 했다. 삼성이 광범위한 우호세력을 만들고 유지할 수 있는 원천은 불법적으로 조성된 비자금이다. 비자금은 현금이나 채권 등으로 보관되거나 전·현직 임직원의 차명계좌 등에 숨겨져 있다. 삼성은 비자금 차명계좌의 존재를 부정하지만 그 실체를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차명계좌의 실체를 인정하는 전직 임원들의 증언도 대기하고 있다. 양심고백을 통해 삼성의 비리를 공개한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은 간명하다. 삼성이 자신의 왕국을 불법과 편법을 통해 대대손손 계승하고자 우리 사회의 지도층을 부패시키고 있으며, 그 원천이 불법적으로 조성된 비자금이라는 것. 그래서 부패 구조의 원천인 비자금의 실체를 공개해 부패 고리를 끊자고 우리 사회에 제안을 한 것이다. 예상했던 것이긴 하지만 삼성의 저항은 강렬하다. 김 변호사의 부도덕성을 부각시키며 그를 ‘배신자’로 몰아붙인다. 김 변호사가 주장하는 비자금 차명계좌도 전면 부인한다. 삼성 핵심 조직의 법무팀장까지 했던 이를 정신병자 취급하고 있는 셈이다. 진실이 밝혀지는 게 그렇게 두려운 것일까? 삼성은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 사회 전반의 반응도 문제다. “그동안 잘 먹고 잘 살다가 이제 와 무슨 소리 하는 것이냐?”는 냉소적인 반응이 적지 않다. 특정 지역 출신이어서 그렇다는 ‘천형의 칼’을 씌우기도 한다. 삼성한테서 ‘떡고물’이라도 받아먹은 이들의 반응이라면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삼성과 관계없는 일반 국민들의 태도가 이렇다면, 우리 사회의 정의는 어디서 찾을 것인지 암담하다. 진실을 마주하기는 두렵기도 하고 불편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를 계속 회피하고 자기 합리화에 빠지면 비굴한 노예의 삶이 기다릴 뿐이다. 삼성은 우리 사회 지도층에게 ‘푼돈’을 던져주며 부끄러운 삶을 살도록 조장하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사회의 지도층 대부분이 이런 덫에 걸려 있는 게 현실이다. 그것이 ‘삼성왕국’의 진실이고 실체다.이제 우리 사회가 삼성 문제를 공론화하는 작업을 시작할 때다. 불법 비자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삼성왕국’의 부패 구조를 청산하는 것이 기업으로서 삼성이 사는 길이고, 우리 사회가 바르게 가는 지름길이다. 우리 사회 지도층도 이번 기회에 삼성의 ‘관리’에서 벗어나 자유인이 되고 싶지 않은가? 그래서 삼성이 아닌 우리 사회를 위해 제대로 한몫을 하고 싶지 않은가? 정석구/경제부문 선임기자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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