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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0.30 18:07 수정 : 2007.10.30 18:07

강태호/남북관계 전문기자

한겨레프리즘

불능화는 간이역이다. 6자 회담 남쪽 수석대표인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의 말이다. 비핵화 2단계 합의인 불능화는 폐쇄에서 폐기 단계로 가는 길에 잠시 머무는 곳이다. 잠정적이고 과도기적인 과정이라는 뜻이다. 북핵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탄력을 받아 ‘10·3 합의문’의 일정표에 따라 빠른 속도로 이 간이역을 향해 달리고 있다. 이 10·3 합의문의 ‘불능화’를 두고서는 미국 내에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6자 회담 미국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는 이렇게 반박했다. “실천이 합의를 앞서가고 있다.”

문제는 불능화 이후다. 12월 말이면 북핵은 그 다음 행선지인 폐기 단계인 종착역으로 떠날 채비를 해야 한다.

불능화와 핵 폐기의 경계는 본래 모호하다. 돌이킬 수 없는 불능화는 사실상 폐기와 같기 때문이다. 반대로 돌이킬 수 있는 불능화는 폐쇄 내지 동결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문제에 부닥친다. 불능화는 그 모호한 경계에 있는 것이다. 이번에 합의된 불능화는 낮은 단계다. 그 경계를 넘어선 게 아니다. 아직은 되돌아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불능화에 합의하는 것과 불능화를 넘어서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불능화의 간이역에서 북한이 비핵화의 목표이자 종착역인 핵 폐기로 가는 기차에 올라탈 것으로 기대하는 건 순진하다.

게다가 불능화 단계는 완전한 신고를 거쳐야 한다. 12월 말로 가면서 혹독한 검증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뉴아메리카재단의 제프리 루이스 핵전략·비확산 국장은 “북한이 핵프로그램에 대해 정확히 신고하더라도(검증 과정에서 제기될) 미국 내 논란의 해결책을 찾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예견했다. 북한 불신 정치가 다시 작동할 것이다. 북한의 플루토늄 핵프로그램은 핵시설의 가동 기록과 현장 조사 등으로 어느 정도 검증이 가능하다. 문제는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이다.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은 그와 같은 기술적 검증이 불가능하다. 루이스 국장은 “불능화 합의를 비판해 온 사람에게 우라늄농축 프로그램 신고 내역은 완전하지 않다고 말하기가 아주 쉬울 것”이라고 말했다.

간이역은 오래 머물 곳이 아니다. 불능화의 한계와 신고의 논란은 완전한 핵 폐기로 가면 극복될 수 있다. 그러나 종착역으로 갈 로드맵이 없다. 1단계 핵 폐쇄와 2단계 핵시설 불능화엔 2·13 이행계획이라는 이행표가 있었다. 10·3 불능화 합의문도 그 바탕엔 2·13이 있다. 로드맵 합의 없이 기차가 출발할 수는 없다. 회담을 진행해 온 이들은 안다. 예컨대 경수로 티켓 없이는 북한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미국도 완강하다. 2차 핵위기 이래 부시 행정부가 제네바 합의를 미련 없이 버린 이유의 하나가 경수로는 핵무기 제조용이 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지금 미국은 경수로는 핵 폐기 너머에 있다고 말한다. 양쪽의 간극은 깊고 넓다.

한마디로 3단계의 핵폐기에는 고도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 그도 그럴 것이 폐기는 구체적이고 최종적이다. 그에 상응하는 관계정상화는 여전히 모호하고 추상적이다. 2단계까지의 덧셈-뺄셈 식의 주고받기로는 풀 수 없다. 되돌아올 수 없는 길로 들어서려면 총련 기관지 <조선신보>가 비유했듯이 ‘돌이킬 수 없는 관계 정상화’가 요구된다. 누가 그런 관계 정상화를 보장할 수 있을 것인가. 핵 폐기의 결단은 김정일 국방위원장만이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조지 부시 대통령이 그런 관계 정상화를 약속할 수 있을 것이다. ‘종전을 위한 선언’으로 정리된 4자 정상회담이 3단계로 가는 길을 열어가는 데 절실히 필요한 이유다.

강태호/남북관계 전문기자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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