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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0.25 17:55 수정 : 2007.10.26 15:13

병상에 누워있는 김지수 선수. 스포탈코리아 제공.

[한겨레 프리즘] 송호진
청소년축구대표 김지수 무릎수술 받다 식물인간

병원쪽 “수술 잘됐는데 마취 안 풀려” 과실 부인

머리맡에 축구공 두 개가 있다. 거기에 적힌 깨알 같은 친구들의 글씨, 아니 애원들. “지수야, 논산시장으로 순대 먹으러 가야지?” “왜 꿈속을 헤매고 있니?” 조그만 물통엔 꽃 한 송이가 담겨 있다. 시들지 않은 꽃. 일주일을 넘기지 못할 거라 했다. 지난 23일로 벌써 100일째다. 지수는 마지막 꽃잎을 떨어뜨리지 않고 있다. 엄마는 눈만 뜨게 해달라고 한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어린 것이 저렇게 버티는데,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해준 게 너무 없어서, 내가 한이 맺혀서….” 병원에서는 사실상 죽었다고 한다. 죽었다? 그럴 애가 아니었다.

김지수. 열여섯살 이하 청소년대표 공격수였다. 지난 4월 여자청소년선수권에서 받은 상금 20만원을 고스란히 가져와 엄마에게 쥐여준 아이였다. “힘들어도 이 핏덩어리 냄새 한번 맡고 참곤 했는데.” 지수는 무남독녀다. 지난 6월 축구대회에서 무릎 십자인대가 찢어졌다. 개인병원에선 생활엔 문제가 없다고 했다. 축구를 하려면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수는 실제 걷고 뛰는 데 별 지장이 없었다. 대전 ㅇ대학병원에 왔다. 여러 선수들이 종종 수술받는 무릎. 전문의들은 이 수술이 어려운 것은 아니라고 한다.

18살 이하 여자 청소년축구 국가 대표 김지수 선수. 여자축구연맹 제공.

수술 전날, 지수는 친구들과 까르르까르르 웃으며 순대를 먹었다. 영어책도 샀다. 수술 후 며칠 입원하는 동안 밀린 공부라도 할 참이었다. “엄마, 차라리 1학년 때 다친 게 다행이에요. 빨리 재활해서 복귀하고 싶어요.” 지수는 이 말을 남겼다. 지수는 수술 전 열여덟살 이하 청소년대표로 승격됐다. 기뻤고, 두근거렸을 것이다. 엄마는 딸의 훈련일지를 봤다. 부족한 점, 존경하는 선수 본받을 점, 슛 각도 등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늘 마지막엔 “좀더 노력해야지” “내 안의 잠재력을 믿는다”고 적었다.

수술은 예정시간을 훌쩍 넘겼다. 의료진은 지수를 일반병동이 아닌 중환자실로 밀고 갔다. “수술이 잘됐다. 그런데 마취가 덜 풀렸다”고 했다. 엄마는 고맙다고 머리를 조아렸다. 중환자실 앞에 쪼그리고 앉아 기다렸다. 엄마는 그 말을 믿은 자신이, 그 말을 했던 의사가 원망스럽다. 엄마는 “못 배운 죄”라 했다. 지수는 수술 도중 쇼크를 일으켜 뇌사상태에 빠졌다. 출혈이 심했다고 한다. 이날 수술엔 선택진료를 신청한 의사가 아닌 인턴이 마취를 진행했다. 병원은 하반신 마취도 부족해 전신마취까지 시켰다. 쇼크를 일으킬 만큼 지수 심장이 나빴나? 엄마는 소년체전 육상 중장거리 등에 도 대표로 출전했던 아이였다고 말한다. 한 정형외과 박사는 보통 관절내시경으로 무릎을 수술하는데 대퇴동맥을 잘못 건드리면 피가 엄청 쏟아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뇌사까지 간 걸 쉽게 납득하지 못했다. 병원 쪽은 마취 의사가 바뀐 점은 인정하나 “과실은 아니다”라고 했다. 병원 이미지가 나빠질 것을 더 걱정했다.

인공호흡기가 숨을 불어넣는다. 덩달아 지수도 숨을 쉬며 쌔근쌔근 잠을 잔다. 없는 살림에 2년간 부은 엄마의 적금은 10월에 끝난다. 딸이 갖고 싶은 것, 그래 한번쯤 사주자며 모은 돈이다. 적금을 찾는 날, 엄마는 또 억장이 무너져야 하나.

엄마는 응급처치는 바로 됐던 건지, 수술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못 배워 딸 고생시킨 엄마의 마음을 의사들도 헤아려 주기를 원한다. 그리고 딸이 포기하지 않듯, 병원도 이쯤에서 그만두자는 마음을 갖지 않기를 바란다. 지수는 열일곱번째 생일을 중환자실에서 맞았다. 침대 위엔 태극마크 유니폼을 입은 지수의 사진이 대롱대롱 걸려 있다. 그만 일어나렴, 지수야. 그토록 원했던 그 옷, 다시 입고 뛰어야 하지 않겠니?

송호진/스포츠부문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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