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6.21 17:18
수정 : 2007.06.21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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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호/남북관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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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2·13 합의는 지리멸렬 상태였다. 합의 이행 시한을 두 달이나 넘긴 상황에서 구원투수는 의외로 러시아였다. 왜 러시아냐 하는 의문이 든다. 그동안 러시아는 6자 회담의 변방에 있었다. 심하게 말하면 ‘들러리’였다. 중국이 6자 회담의 최대 수혜국이라는 말도 있었다. 미국이 북핵 문제 해결을 중국에 떠넘긴 탓도 있다. 그러나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에서 중국은 실망스러웠다. 그렇다면 왜 러시아냐는 의문은 조금 풀린다. 러시아의 존재가 비디에이 송금문제 해결로 뚜렷이 부각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기에 그치면 전체의 그림을 못 보는 것이다. 러시아의 등판은 ‘전략적 견지’에서 나온 것이다. 단순히 송금 ‘편의’를 봐 준 것이 아니다.
5월30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분명한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그가 말하는 계획은 뭔가? 지난 3월6일 송민순 장관이 모스크바를 찾았다. 이때 라브로프 장관은 송 장관과의 회담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그 ‘계획’의 일단을 밝혔다. 먼저 북한의 대러시아 채무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대러 채무 문제는 두 나라 협력의 걸림돌이었다. 그걸 치우겠다는 것이다. 그는 또 ‘경제협력 및 에너지를 추가로 지원하는 문제’를 효과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3월 22∼23일 모스크바에서 ‘북-러 통상경제 및 과학기술 협력위원회’가 열렸다. 7년 만에 두 나라가 본격적인 협력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범위도 △러시아의 대북송전 △김책제철소의 생산 정상화 △북한 노동력 활용 등 열세 분야에 걸쳐 에너지·수송·임업·철강·시멘트·기계제작 등이 망라됐다. 북한이 경제 회생용 지원과 협력을 구했다면, 러시아는 나진항 거점화를 겨냥한 극동개발 전략으로 나왔다. 나진을 극동지역의 물류기지로 활용하면서 장기적으론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연계 사업 △동시베리아 석유·천연가스의 수출 중개 기지로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러시아 석유회사 가스프롬 네프트가 나진-선봉 원유공급 및 정유시설 재가동을 제안하고, 러시아철도공사(RZD)가 나진∼하산 철도 개보수 및 나진항 개발을 본격화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러시아의 나진항 거점화는 중국 견제 의도도 담고 있다. 나진은 중국 동북삼성이 태평양으로 진출하려는 교두보다. 중국의 동진과 러시아의 남진이 충돌할 수 있는 교차점이다. 북한이 러시아의 손을 들어준 것인가, 러시아가 북한을 움직이고 있는 것인가? 어떤 것이 됐든 5월19일 북한은 외무상에 8년여 러시아 대사를 지낸 박의춘을 임명했다. 북한의 러시아 배려다.
이런 흐름이 남-북-러 삼각협력을 만들어내고 있다. 예컨대 북한은 4월19일 제13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추위)에서 나진-선봉지구 원유화학공업기지 공동건설 및 제3국(시베리아) 공동진출을 위한 협력을 제안했다. 3월의 북-러 경제협력위가 4월의 남북 경추위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나진∼하산 철도 개보수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러시아의 주도가 두드러진다는 데 있다. 4월말 평양에서 러시아 철도회사와 북한 철도성 대표들은 이 사업을 추진할 합영기업을 만드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북은 러시아에 투자자 선정 권한을 넘겼다. 그래서 한국철도공사와 네 물류회사가 참여한 한-러 합작 물류회사가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지분은 한국 쪽이 40%, 러시아철도공사가 60%라고 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나진의 주도권은 러시아에 넘어갈 우려가 있다. 동북쪽에서 러시아가 남진하고 있다.
강태호/남북관계 전문기자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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