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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5.22 17:10 수정 : 2007.06.21 13:59

강태호/남북관계 전문기자

한겨레프리즘

떠들썩했던 열차 시험운행이 끝났다. 경의·동해선 열차가 지나간 분계선과 비무장지대(DMZ)에는 다시 적막감이 감돌 것이다.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또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 것인가?

시험운행에서 남북은 같지 않았다. 남은 헬기가 동원되고 수백 발의 폭죽과 풍선들이 어우러진 잔치였던 반면, 북은 환호는 물론이고 이렇다할 행사도 없었다. 말도 달랐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경의선 열차가 출발하기 전 환담에서 ‘남북이 함께 이뤄낸 위대한 승리의 역사’를 언급했다. 그러나 권호웅 북쪽 내각 책임참사는 “아직까지 위대하다는 말을 붙이지는 말라”고 했다.

17일 평양에서 이 행사를 지켜봤다. 정확히 말하면 양각도 호텔에서 텔레비전을 통해서였다. 위성방송을 수신하는 호텔 텔레비전에서는 오후 5시쯤 일본의 <엔에이치케이>와 영국의 <비비시>가 화면과 함께 행사를 전했다. 그 전날은 물론이고 그 때까지 북은 침묵했다. 저녁 8시20분쯤 <중앙텔레비전>이 첫 보도를 했다. 1분 정도. 현장화면은 물론 없었다. 그에 앞서 15일 주동찬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북쪽 위원장이 <한겨레>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이번 합의의 주역이다. 16일 내려가는데 사진이라도 찍자고 했다. 답이 없었다. 평양역의 사진 촬영 요청도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평양에서 본 열차 시험운행은 ‘남의’ 행사였다.

왜 일방적인 것일까?

이재정 장관은 ‘시험운행에 즈음해 국민에게 드리는 글’에서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꿈이 실현되는 순간입니다”라고 했다. 분명 우리는 그 꿈의 첫발을 내디뎠다. 철의 실크로드를 선언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감회는 남달랐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그에 못지 않았을 것이다. 2003년 2월25일 노 대통령의 첫 취임사에는 이런 다짐이 있었다. “부산에서 파리행 기차표를 사서 평양, 신의주, 중국, 몽골, 러시아를 거쳐 유럽의 한복판에 도착하는 날을 앞당기겠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잘 들여다 보면 그 꿈은 남쪽의 꿈일 뿐이다.

북은 늘 대륙과 연결돼 있었다. 철도 연결은 북이 남으로 오는 길이 아니라, 남이 북으로 가는 길이다. 북에서 내려온 기차가 갈 수 있는 곳의 끝은 부산일 뿐이다. 그것도 동해선은 제진까지만 연결돼 있다. 북한의 냉담한 반응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북방한계선(NLL)은 그 반대다. 이번엔 남쪽이 냉담하다. 철의 실크로드는 북방으로 가는 길이다. 그러나 남쪽은 북으로 가는 기차를 얘기하면서도 정작 북방한계선에는 침묵한다. 경의선의 논리를 온전히 따른다면 말 그대로 북방 한계선은 우리 스스로 걷어내야 한다. 실제 말이 북방한계선일 뿐 본질은 남방한계선이다. 리영희 교수가 지적했듯이 애초 북방한계선은 유엔사가 50년대 북쪽 해안에 대한 군사적 침투 등 서해에서 한국 해군의 군사행동을 방지하려고 그어 놓은 것이다. 이는 정전협정의 군사분계선이 아니며, 그 남쪽이 우리 영해가 아님은 물론이다. 남쪽 군사력의 행동범위를 통제하려던 북방한계선은 북쪽 해군과 선박의 남방저지선이 됐다. 그래서 경의선은 열고 북방한계선은 열 수 없다는 건 북으로 가는 남쪽의 기차는 되고, 남으로 오는 북쪽의 배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난 18일 북의 차선모 육해운성 국장은 남포 서해갑문을 방문한 남쪽 경제대표단에게 서해 쪽을 손으로 가리키며 저쪽으로 가면 인천이라고 말했다. 바다에도 길이 있다. 경의·동해선이 열리는데 군사분계선도 아닌 북방한계선으로 막아두고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강태호/남북관계 전문기자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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