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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30 18:20 수정 : 2019.12.31 09:34

박복영 ㅣ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경제학)

뜨거운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수도권 집값 급등으로 국민을 분노와 우울에 빠지게 만든 고약한 한 해였다. 정부 대책이 나온 뒤 과열이 진정됐다지만 효과는 아직 불확실하다. 집은 거주수단이며 집값이 오르는 것은 공급이 부족해서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길게 보면 맞는 말이지만, 지금 상황은 그것이 아니다. 왜 집을 사려고 하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은 그 집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집값이 오를 것 같아서라고 답할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답이다. 가격상승 예상이 수요를 유발하고 그래서 실제로 가격이 상승하는 것이다. 거주가 목적이라면 소유보다 비용이 적게 드는 전세 가격이 먼저 올라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지금의 주택 매입은 한마디로 수익 추구를 위한 투자행위다. 다른 금융거래와 다를 바가 없다. 그리고 부동산 거래는 저축이나 주식투자와는 비교할 수 없이 규모가 큰 투자다. 한번의 성공이 수십년 일하거나 저축한 결과보다 나을 수 있다. 그래서 기대수익률에 매우 민감할 수밖에 없다. 대책도 투자나 금융의 관점에서 찾아야 한다. 시장을 진정시키려면 기대수익률을 낮추는 것이 관건이다. 보유세 인상이나 양도소득세 중과도 결국 기대수익률을 낮추는 조치다. 그런데 기대수익률에 가장 중요한 변수는 금리다. 금리가 오르면 주택구입 자금의 조달비용이 증가할 뿐 아니라, 예금 등 대체투자의 수익률이 증가해 기회비용도 상승한다. 많은 학술적 연구들이 실제로 그 효과를 입증하고 있다.

하지만 금리 인상을 주저하게 하는 세가지 장애물이 있다. 첫째는 성장률도 낮은데 금리까지 올리면 경기 위축이 심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그런데 금리가 낮으면 투자가 촉진된다는 증거는 없다. 지금처럼 무역전쟁과 글로벌 경기침체 상황에서 그 효과는 더 기대하기 어렵다. 두번째 걸림돌은 일부 지역 집값 잡으려고 금리를 조정하는 것은 과하다는 생각이다. 지금 부동산 과열은 강남 일부의 문제가 아니라 인구의 60%가 거주하는 수도권의 문제다. 그리고 금리가 올라도 과열이 없는 지방 부동산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 장애물은 중앙은행에는 물가안정이 목표이지 부동산 가격은 중요하지 않다는 인식이다. 사실 이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런데 주택가격은 가장 중요한 생활비 중 하나다. 청년들의 결혼 여부와 같이 인생 전체를 결정할 수도 있는 중요한 물가임을 기억해야 한다. 물가안정이 중앙은행의 불변의 목표라는 생각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1930년대 초인플레이션과 1970년대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물가안정이 최우선 목표가 됐다. 그 전에는 물가안정이 아니라 금융위기 방지가 목표였다. 21세기 들어 인플레이션은 더 이상 성숙 경제의 걱정거리가 아니게 됐으며, 대신 금융안정이나 자산시장 과열을 막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 됐다. 2008년 서브프라임 위기나 2010년 유로위기에서 보듯 현대 경제위기의 대부분은 부동산시장 과열과 급락으로 시작됐다. 부동산 급락을 막지 못하는 이유는 과열 위험을 제때 인식하지 못하고 또 금리 인상이나 유동성 흡수를 주저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런 위험을 경계해야 할 시점이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최근 가계부채 증가율이 둔화되고 있다고 안심하는 듯하다. 하지만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3분기에 160%로 최근 3년간 무려 15%포인트 올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 190%에 육박해 회원국 중 수준과 증가율 면에서 최상위권이다.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강화됐는데도 이런 상황이다. 저금리에도 불구하고 부채규모 증가 때문에 가처분소득 대비 이자부담도 20년 만에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지금 부채규모를 억제하지 않으면 나중에 금리 인상은 더 어렵게 된다. 그럼에도 한국은행 내에는 금리를 더 낮추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고 한다. 집값은 우리 일이 아니며 물가만 보겠다는 생각인데, 정작 목표는 달성하지 못하면서 우리 경제에 큰 과오만 남길 가능성이 크다.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유럽 국가에서 최근 저금리가 디플레이션은 못 막고 부동산 과열만 초래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우리 중앙은행도 관성에 얽매이지 말고 경제 전체를 위해 올바른 판단을 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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