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5.10 18:01 수정 : 2019.05.10 23:01

전범선
가수·밴드 ‘양반들’ 리더

홍성환이 퇴사했다. 홍성환은 내가 예전부터 같이 사업하자고 꼬시던 형이다. 아마 삼년 전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원대한 이상을 품었다. 언젠가는 자유롭게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자고 다짐했다. 독립잡지를 만들자, 패션 브랜드를 하자, 스피키지 바를 차리자 등등 말로는 세계를 여러 번 정복했다. 그러나 그때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돈도 없고 계획도 없고 용기도 없었다. 결국 형은 회사에 취직했고 나는 군대에 갔다.

어언 이년이 지났다. 나는 제대해서 밴드 ‘양반들’과 다시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친구 둘과 해방촌에 사찰음식점 ‘소식’을 개업했고, 다른 친구 둘과 성대 앞 책방 ‘풀무질’을 인수했다. 일단 저지르고 봤다. 군 생활 동안 억눌려 있던 창조적 에너지와 욕망을 마구 분출했다. 그러다 예능 방송까지 들어가면서 과포화 상태에 이르렀다.(지금은 이 칼럼도 써야 한다.) 돌리는 접시가 너무 많아졌다. 분명 하나는 깨질 것만 같았다.

그때 홍성환이 등장했다. 모 국제기구에서 월급 잘 받고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마라샹궈를 먹으면서 푸념했다. “형, 내가 책방을 하기로 했는데 이게 생각만큼 쉽지가 않네.”

원래 누가 힘들다고,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기 마련이다. 책방 풀무질은 아예 망했다고 은종복 대표님이 광고를 하셨는데, 그걸 살리겠다고 내가 찾아갔다. “후배님들한테 이 책방을 물려주려니 고맙고도 미안해요” 하시면서 눈물 흘리실 때마다, 나는 가슴이 아프면서도 의욕이 샘솟는다. 나만 해도 후배가 음악 한다고 하면 “절대 하지 마, 그러다 나처럼 돼!”라고 말한다. 그러면 걔는 선망의 눈길을 보낸다. 애초에 말린다고 안 할 사람이면 이쪽 일에 관심을 갖지도 않는다.

홍성환도 역시 청개구리였다. “형, 이거 하면 대박이야! 무조건 같이 하자!”고 했을 때는 씨알도 안 먹혔던 사람이 “아, 망해가는 책방을 살리려니 답이 없네” 하니까 덥석 미끼를 물었다. 처음부터 꼬실 때 내가 앓는 소리를 했어야 한다.

어쩌면 이유는 나보다 홍성환 쪽에 있을 수도 있다. 회사를 좀 다녀보니 적성에 안 맞았을 수도 있고, 나이 서른이 넘으니 생각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이번엔 무언가 달랐다. 마라샹궈 회동 이후 몇번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지난달 통보가 왔다. “야, 나 사직서 제출했어.”

갑자기? 내가 형한테 약속해준 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이미 “제출할까?”도 아니고 “제출했어”라니. 물론 나는 대환영이었다. 홍성환은 쉬지도 않고 바로 이번달부터 우리 사무실로 출근했다. 오늘도 양복 입고 와서 나를 깨웠다.(사무실이 곧 내 집이다.) 미안하다. 나 때문에 인생이 망했을 수도 있다.

나는 사업을 시작할 때 두 선배의 조언을 들었다. 둘은 같은 유명 외국계 기업 출신이었다. 한명은 진작에 퇴사해서 나름 성공한 영세 자영업자다. 마흔이 가까운 그는 술 한잔 걸치고 말했다. “아직도 그 회사 다니는 사람들은 그것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에요.” 반대로 그 회사의 임원이 된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얘, 그래도 여기까지 올라오면 세상의 대우가 달라진단다.” 나는 두 사람 앞에서 똑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우리 모두 퇴사하기 마련이다. 늦으면 60살에 하는 것이고 빠르면 홍성환처럼 지금 하는 것이다. 어차피 할 거면 빨리 하는 게 나을 수도 있고, 어차피 할 거니까 천천히 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퇴사란 누가 옆에서 꼬신다고 하는 것도 아니요, 막는다고 안 하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홍성환 퇴사에 대한 내 책임을 회피해본다.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삶의 창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