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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8.17 17:28 수정 : 2018.08.18 13:22

이길보라
독립영화감독·작가

이번 칼럼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있었던 게이 프라이드의 한 장면에 대해 쓸 생각이었다.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이 축제는 행사 기간만 되면 무지개 색깔로 도시를 가득 채운다. 수많은 관광객으로 호텔은 동이 나고 온 동네는 축제 분위기가 된다. 네덜란드는 세계 최초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나라다.

행사장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이 춤을 추고 있었다. 그중 가장 돋보였던 건 수어통역사였다. 가수는 노래를 부르고 근육질의 백댄서들이 춤을 추는데 시선은 통역사에게 쏠렸다. 그도 그럴 것이 마치 공연의 한 요소 같았기 때문이다. 검은 바지에 하얀 반팔 셔츠, 나비넥타이에 귀여운 턱수염까지.

노래를 수어로 통역하는 능력도 탁월했다. 한국 수어와는 달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표현력이 풍부해 눈에 쏙쏙 들어왔다. 무대와도 잘 어울리는 통역이었다. 가수가 무대에 나오자마자 그를 보고는 “이 사람 뭐지? 우리 공연팀 아닌데?” 하고 물을 정도였다. 그는 대답 없이 통역을 했다. 전문적이기까지 했다. 가수는 이렇게 말했다.

“게이 프라이드는 모든 사람들의 것이죠. 저 손을 돌려 하는 박수 정말 멋지네요. 여기서는 우리 이렇게 박수 칩시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행사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손을 뻗어 ‘반짝이는 박수 소리’ 갈채를 보냈다. 아주 많은 손이 반짝였다. 꿈같았다. 수어 통역이 소수의 누군가만을 위한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 되었다. 공연 내내 사람들은 손바닥을 부딪치는 대신 손을 돌려 반짝이는 박수를 했다. 성소수자만의 축제가 아니었다. 우리 모두의 축제였다.

이튿날,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1년 만이었다. 무거운 장비를 들고 온 터라 택시를 타야만 했다. 이윽고 후회했다. 여전했다. 남성 택시기사는 내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짜증을 냈다. 유턴이 되는데도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반대로 탔다며 내리라고 화를 냈다. 과격한 운전은 덤이었다. 멀미에 울상이 되어 집에 도착했더니 남동생은 이렇게 말했다.

“미안한데 나한테는 그런 일이 절대 안 일어나. 누나가 타면 진짜로 그래?”

그래도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다. 올해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처음으로 서울시청 광장이 꽉 찼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였다. 어쩌면 한국에서 다시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사건에 대한 1심 선고가 나왔다. 무죄란다. 5개월 전, 시선을 바닥에 두고 인터뷰를 이어가는 피해자의 영상을 봤다. 저 여자는 정말 벼랑 끝이구나, 이제 발 디딜 곳은 여기뿐이라는 생각으로 저렇게 위태롭게 서 있구나, 싶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용감했다. 그 용기 뒤로 수많은 여성이 다시 벼랑 위에 섰다. 그녀는 그런 존재였다. 그렇기에 한국은 ‘괴롭지만 언젠가 돌아가고 싶은 곳’이었다. 그러나 오랜만에 돌아온 한국은 전혀 반갑지 않았다. 진보하기는커녕 후퇴했다.

대한민국의 사법체계는 또다시 ‘자기들만의 리그’인 것을 증명했고 여성, 아니 소수자를 위한 나라는 없음을 입증했다. 가해자가 진술을 바꾸고 증거를 인멸해도 무죄를 선고받는 나라. 얼마나 많은 이가 벼랑 끝에서 떨어지고 또 떨어져만 하는 것일까.

8월18일 오후 5시에 성폭력 성차별 끝장집회가 열린다. 한국에 단 3주 머무르는 짧은 일정이지만 집회에 나갈 것이다. 20세기 초 영국의 여성참정권 운동을 다룬 영화 <서프러제트>에는 이런 대사가 있다.

“우리는 창문을 깨고 불을 질러요. 전쟁이 남자들이 들어주는 유일한 언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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