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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8.10 17:26 수정 : 2018.08.10 21:39

이명석
문화비평가

지구와 태양이 지나치게 친해진 날이었다. 나는 불덩이가 뚝뚝 떨어지는 정오의 도로에 스쿠터를 타고 나섰다. 사거리에서 아깝게 신호를 놓쳤고, 바람 한 점 없는 뙤약볕 아래 멈춰야 했다. 그때 정지선 1미터 뒤의 작은 그늘을 보았다. 조금이라도 태양을 피할 수 있을까 싶어 그 아래 섰다.

그러자 빠앙! 경적이 울렸다. 뒤돌아보니 검은 승합차가 콧김을 뿜어대며 나를 밀어댔다. 나는 정지선 앞으로 스쿠터를 당겨주었고, 승합차는 꽁무니에 바싹 붙었다. 신호가 들어오자 옆을 칼처럼 스치고 튀어나갔다. 잠시 후 만난 친구에게 말했다. “내가 아까 잘못했지?” “아니야. 그 차가 못됐네.” “그게 아니라, 경적 울릴 때 정말 화들짝 놀랐어야 해. 도로에 발랑 넘어질걸 그랬어.”

나는 할리우드 액션을 잘한다.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걸어가는데, 자동차가 달려오면서 경적을 울린다. 빨리 건너라는 거겠지. 하지만 나는 으악 하며 귀를 감싸쥐고 멈춰 선다. 자동차가 완전히 설 때까지 원망 어린 눈초리로 쳐다본다. ‘당신은 지금 심신이 연약한 시민을 무척 놀라게 했어요.’ 길을 걷는데 불붙은 담배를 휘두르는 사람이 있다. “앗 뜨거.” 나는 펄쩍 뛰며 소리 지른다. 상대에게 욕하거나 따지지 않는다. 내 고통을 충분히 보여주면 상대가 더 미안해한다.

타고난 재능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였다. 나는 학교에서 매를 맞거나 군대에서 얼차려를 당할 때 항상 무표정이었다. 상대는 더 화를 냈는데, 왜 그런지 몰랐다. 그러다 차차 깨달았다. 엄살로 유명한 친구와 치과에 갔는데, 의사가 친구에게 말했다. “통증의 역치가 아주 낮으시네요.” 나한테는 이렇게 속삭였다. “초등학생도 저분처럼 소리 지르고 버둥대지는 않거든요.” 다음주에 치과에 갔더니 그 친구를 극진히 대접했다. 잘 참는 나는 찬밥 신세였다. 하지만 이런 엄살쟁이들을 친구로 두는 것도 괜찮다. 그들은 선생의 매를 멈추게 하고, 사무실의 에어컨을 틀게 하고, 모든 곳에 숨쉴 틈을 만든다.

아픔보다 더 긴요한 게 기쁨의 리액션이다. 라디오에서 만난 아나운서가 <아침마당>을 진행했다는 사실을 듣고 이렇게 물었다. “아침 생방송 티브이(TV)는 정말 힘들겠어요. 저는 아침 라디오도 너무 힘들더라구요. 계속 들뜬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아나운서는 <아침마당>의 힘은 방청객들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그분들 앞에 서면 어떤 출연자도 금세 <아침마당>의 식구가 된다고. 한번은 리처드 기어가 출연했는데, 방송 후 화장실 앞에서 아나운서를 만나 진심으로 칭찬했단다. 세계 여러 나라의 쇼에 나갔는데, 당신 쇼가 최고라고. 그 영광은 새벽부터 도시락을 싸들고 나와 열심히 웃어주고 울어주는 방청객들에게 돌려야 하겠다.

‘리액션 부자’들은 우리 공동체의 소중한 자원이다. 사적인 모임은 물론 강의, 발표, 회의 등에서도 그들이 만들어내는 힘은 강력하다. 티브이 예능의 영향인지 사람들이 기쁨, 슬픔, 애정, 좌절 등을 표현하는 방법도 다채로워졌다. 모바일 메신저의 이모티콘은 쉽고 즐겁게 감정을 드러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런데 아직도 감정 표현을 어른스럽지 못한 행동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누가 힘들다고 하면 엄살쟁이, 놀랐다고 하면 겁쟁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런 감정들을 적절히 드러내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인사이드 아웃>의 아빠 머릿속처럼 버럭이(Anger)만 가득해진다. 모든 문제적 상황은 전쟁에 다름 아니며, 분노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빵빵대며 경적만 울려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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