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 꽃 서리를 해다가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였습니다. 주인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길가 봉숭아 무리에서 꽃과 잎사귀를 골고루 조금씩 따다가 오이지 눌러놓는 납작돌 위에 놓고 백반 넣고 콩콩 찧어 왼손 손톱에 올렸습니다. 밤새 손가락이 쪼글쪼글 절여지더니 인주를 묻혀놓은 듯 손끝이 덩달아 붉습니다. 손톱에 물이 잘 올라서 물속에 담그고 펼쳐 볼 때마다 기분이 좋습니다. 내가 봉숭아물을 들일 때마다 엄마는, 봉숭아물을 들이면 저승길이 밝아진단다 하면서 덕담인지 한탄인지 아는 사실을 그저 말할 뿐인지, 당신도 알 수 없는 뜻의 말을 습관처럼 하곤 합니다. 그 시들한 연상이 서글퍼서 엄마에게는 이 고운 봉숭아물을 들여주겠다 해본 적이 없습니다만, 내가 영화에 나오는 ‘이티’(E.T.)처럼 봉숭아물 들인 손가락에서 나오는 빛으로 어둑한 길을 밝히며 어디론가 아득히 걷는 상상도 해보면서 헤벌쭉 웃긴 합니다. 어제는 장구를 들쳐 메고 시장길을 오르는데 채소 좌판을 벌이고 있는 이가 손짓하며 부릅니다(우리는 서로를 아주머니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채소 친구, 장구 친구입니다). 이 더위에 그 크단 걸 왜 짊어지고 다니누, 여기다 놓고 다니면 내가 봐주지./ 그럼 난 장구를 어떻게 치라고./ 해본 소리여./ 말 난 김에 내 장구 맡길 테니 여기서 신나게 쳐보시든지./ 그래 볼까?/ 옴마야, 해본 소리여. 우리는 깔깔거리며 웃었습니다. 그런다고 이 땡볕 더위가 한순간이라도 가시는 것도 아니지만, 웃으니 좋습니다. 수건으로 땀을 닦아가며 종일 좌판을 벌이는 사람이, 장구 지고 가는 동네사람 벌건 얼굴 안쓰럽다고 꼬부라진 오이 두개 넣어줍니다. 강판에 갈아서 얼굴에 붙이랍니다. 나는 고마워서 봉숭아물 들인 손가락을 쫙 펴서 보여줬습니다. 그이가 오래된 친구 손가락 본 듯 즐거워했으니, 서로에게 답례로 충분합니다. 나이 먹는다는 게 시답잖은 일에 웃지도 않고, 시답잖은 일에 눈을 빛내지도 않고, 일마다 심드렁해지고 그런 거라면 참 싫을 것 같은데 요새 내가 그렇지 싶습니다. 언젠가부터 웃음 인심이 박해진 듯해서 마음이 안 좋습니다. 살짝 헤퍼도 좋은 웃음기가 사라지고, 농담마저도 의식하고 연습해야 나오는 일종의 서양 매너 같습니다. 입꼬리가 올라갈락 말락 하는 순간마다 잡아내리는 무엇이 있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따위 수준으로는 웃어줄 수 없어 하는 인색한(또는 재수 없는) 마음이 생긴 것도 아니(라고 믿)고, 세상 사람이 다 웃고 난 다음에야 웃으리라 하는 부처의 마음에서는 더더욱 감히 아닐 텐데 말이지요. 그러던 차에 채소 친구와의 시답잖은 농담은 여간 반가운 시간이 아닙니다. 채소 친구는 하루에 딱 팔릴 만큼만 가져와서 저녁때가 되면 다 털어내고는 착착 접힌 돗자리 위에 보란 듯이 감자 몇알, 마늘 한묶음 달랑 올려놓고 설렁설렁 노는 듯 앉아 있습니다. 그 홀가분한 해피엔딩이 너무 좋아서 떨이를 하려고 저녁나절에 일부러 나가면, 딱 나 같은 사람들이 해피엔딩의 홍복을 누리겠다고 나와 이미 선수를 쳤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봉숭아물을 들이다가 잠깐 눈시울이 좀 뜨거워졌더랬습니다. 체 게바라의 말처럼, ‘가슴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가진, 리얼리스트’였던 이가 있었고 그 역시 구차한 리얼의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모두의 해피엔딩을 바랐습니다만, 자신의 삶의 길을 멈추었습니다. 봉숭아물을 들인 왼손을 들어 저 어두운 길에 들어 보입니다. 그 길이 좀 밝아졌는지요?
왜냐면 |
[삶의 창] 모두에게 해피엔딩 / 김종옥 |
작가·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 꽃 서리를 해다가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였습니다. 주인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길가 봉숭아 무리에서 꽃과 잎사귀를 골고루 조금씩 따다가 오이지 눌러놓는 납작돌 위에 놓고 백반 넣고 콩콩 찧어 왼손 손톱에 올렸습니다. 밤새 손가락이 쪼글쪼글 절여지더니 인주를 묻혀놓은 듯 손끝이 덩달아 붉습니다. 손톱에 물이 잘 올라서 물속에 담그고 펼쳐 볼 때마다 기분이 좋습니다. 내가 봉숭아물을 들일 때마다 엄마는, 봉숭아물을 들이면 저승길이 밝아진단다 하면서 덕담인지 한탄인지 아는 사실을 그저 말할 뿐인지, 당신도 알 수 없는 뜻의 말을 습관처럼 하곤 합니다. 그 시들한 연상이 서글퍼서 엄마에게는 이 고운 봉숭아물을 들여주겠다 해본 적이 없습니다만, 내가 영화에 나오는 ‘이티’(E.T.)처럼 봉숭아물 들인 손가락에서 나오는 빛으로 어둑한 길을 밝히며 어디론가 아득히 걷는 상상도 해보면서 헤벌쭉 웃긴 합니다. 어제는 장구를 들쳐 메고 시장길을 오르는데 채소 좌판을 벌이고 있는 이가 손짓하며 부릅니다(우리는 서로를 아주머니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채소 친구, 장구 친구입니다). 이 더위에 그 크단 걸 왜 짊어지고 다니누, 여기다 놓고 다니면 내가 봐주지./ 그럼 난 장구를 어떻게 치라고./ 해본 소리여./ 말 난 김에 내 장구 맡길 테니 여기서 신나게 쳐보시든지./ 그래 볼까?/ 옴마야, 해본 소리여. 우리는 깔깔거리며 웃었습니다. 그런다고 이 땡볕 더위가 한순간이라도 가시는 것도 아니지만, 웃으니 좋습니다. 수건으로 땀을 닦아가며 종일 좌판을 벌이는 사람이, 장구 지고 가는 동네사람 벌건 얼굴 안쓰럽다고 꼬부라진 오이 두개 넣어줍니다. 강판에 갈아서 얼굴에 붙이랍니다. 나는 고마워서 봉숭아물 들인 손가락을 쫙 펴서 보여줬습니다. 그이가 오래된 친구 손가락 본 듯 즐거워했으니, 서로에게 답례로 충분합니다. 나이 먹는다는 게 시답잖은 일에 웃지도 않고, 시답잖은 일에 눈을 빛내지도 않고, 일마다 심드렁해지고 그런 거라면 참 싫을 것 같은데 요새 내가 그렇지 싶습니다. 언젠가부터 웃음 인심이 박해진 듯해서 마음이 안 좋습니다. 살짝 헤퍼도 좋은 웃음기가 사라지고, 농담마저도 의식하고 연습해야 나오는 일종의 서양 매너 같습니다. 입꼬리가 올라갈락 말락 하는 순간마다 잡아내리는 무엇이 있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따위 수준으로는 웃어줄 수 없어 하는 인색한(또는 재수 없는) 마음이 생긴 것도 아니(라고 믿)고, 세상 사람이 다 웃고 난 다음에야 웃으리라 하는 부처의 마음에서는 더더욱 감히 아닐 텐데 말이지요. 그러던 차에 채소 친구와의 시답잖은 농담은 여간 반가운 시간이 아닙니다. 채소 친구는 하루에 딱 팔릴 만큼만 가져와서 저녁때가 되면 다 털어내고는 착착 접힌 돗자리 위에 보란 듯이 감자 몇알, 마늘 한묶음 달랑 올려놓고 설렁설렁 노는 듯 앉아 있습니다. 그 홀가분한 해피엔딩이 너무 좋아서 떨이를 하려고 저녁나절에 일부러 나가면, 딱 나 같은 사람들이 해피엔딩의 홍복을 누리겠다고 나와 이미 선수를 쳤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봉숭아물을 들이다가 잠깐 눈시울이 좀 뜨거워졌더랬습니다. 체 게바라의 말처럼, ‘가슴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가진, 리얼리스트’였던 이가 있었고 그 역시 구차한 리얼의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모두의 해피엔딩을 바랐습니다만, 자신의 삶의 길을 멈추었습니다. 봉숭아물을 들인 왼손을 들어 저 어두운 길에 들어 보입니다. 그 길이 좀 밝아졌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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