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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7.13 18:24 수정 : 2018.07.14 14:41

이명석
문화비평가

조금 이상한 영화를 보았다. 도서관에서 엎드려 졸고 있는데, 친구가 깨웠다. “5층에서 애니메이션 상영한대. 보러 갈래?” 잠이라도 쫓을까 싶어 계단을 올라갔다. 극장에 들어서니 아이들이 가득했다. 나는 친구의 팔을 잡았다. “이거 아무래도 더빙 같은데?” 평소 한국어 더빙은 어색해서 피하는 편이었다. 친구가 눈을 흘겼고, 나는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화면의 제목 아래에서 낯선 단어를 보았다. ‘배리어 프리’

“배리어 프리는 시각 청각 장애인을 위해 음성 해설과 자막을 넣어 누구나 즐기도록 한 영화입니다.” 장내 방송에 이어 영화가 시작되었다. 앞이 안 보이는 사람을 위해 모든 상황을 소리로 설명했다. “혜성이 만들어내는 불꽃이 도시 위로 퍼져나간다.” 귀가 안 들리는 사람을 위해 자막이 총출동했다. “부드러운 피아노 소리가 달려오는 전차 소리에 묻힌다.” 이거야말로 티엠아이(TMI·투 머치 인포메이션), 너무 많은 정보가 폭죽처럼 쏟아져 머릿속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그런데 조금씩 익숙해졌다. 오히려 평소보다 느긋하게 영화를 보게 되었다. 마치 눈도 귀도 어둡고 이해력도 떨어지는 할머니 옆에서 손녀가 쫑알쫑알 설명해주는 것 같았다.

내가 작년까지 살던 동네엔 유독 손을 잡고 다니는 사람이 많았다. 30대 엄마와 10대 딸, 그럴 수도 있지. 40대 아빠와 20대 아들, 60대 할머니와 40대 아들? 이건 좀 별났다. 뒤늦게 그들 손의 지팡이를 보았고, 근처에 농학교, 맹학교가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래서인지 그 동네엔 상냥하고 사려 깊은 가족이나 이웃이 많았다. 수영장 샤워실에선 농구 선수 덩치의 아들을 깨끗이 닦아주는 아빠가 있었다. 시각장애인 안내견이 다가오면 목소리를 낮추고, 주변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를 말리는 주민들이 있었다.

내가 그곳에 살면서 뭔가 불편했나? 골목길에 과속방지턱이 많아 택시를 타면 울컥울컥 멀미를 했다. 마을버스의 안내방송을 일일이 따라하는 아이 때문에 신경쓰였다. 지적장애인들이 일하는 카페에서 낯선 사람이 주문하고 있으면 괜히 마음을 졸이기도 했다. 단지 그 정도다.

반대로 고맙기도 했다. 집 앞 골목길엔 꽤나 가파른 계단이 있었다. 밤늦게 올라가다 보면 화가 치밀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오후였다. 두꺼운 안경을 쓴 여자아이가 계단 아래 서 있는데, 엄마가 말했다. “계단 숫자를 세고 외워. 나중엔 혼자 다녀야지.” 아이는 하나둘셋 오르다, 갑자기 계단을 내려가 다시 올랐다. “도레미파솔 하고 긴 계단. 도레미파솔라시 하고 긴 계단. 다시 도레미파 하고 끝. 헥헥.” 그때부터 나는 밤에 계단을 오를 때 눈을 감고 똑같이 계이름을 외웠다. 이상하게 하나도 힘이 들지 않았다. 낯선 세계를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어느 날 청년 셋이 앞뒤로 손을 잡고 자하문 고개를 올라가는 걸 보았다. 제일 앞의 친구는 지팡이를, 제일 뒤의 친구는 가방을 들고 있었다. 조금 더 보이는 사람과 약간 더 잘 듣는 사람과 잘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이 내가 전혀 모르는 세계를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 이르자 몸을 돌려 환하게 웃었다. 실눈 사이로 햇빛이라도 본 걸까? 아니면 청와대 사슴이 우는 소리, 앵두꽃이 피어나는 냄새, 내가 전혀 모르는 감각을 나누었을까?

배리어 프리의 동네는 시간이 조금 천천히 흐르는 곳이다. 누구든 불완전하다는 걸 깨닫고, 각자가 가진 감각을 나누며, 손잡고 더듬더듬 언덕을 올라가는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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