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 이른 아침, 딸기가 전화를 걸었다. 그저 안부를 물으려고 했단다. (대체 뭔 일일까?) 날씨 좋고 시절 좋고, 가내 두루두루 무고하단다. (일상은 평안하군, 그런데 용건은?) 한반도에 평화가 온다니 시골에서도 기분들이 좋단다. (그렇지, 나도 요새 이유없이 기운이 펄펄 나, 그런데 정말 용건은?) 용건이 그거란다. 안부를 묻는 거, 그것처럼 긴한 용건이 어디 있어, 라고 딸기가 웃으며 말했다. 얼마 전부터 아침 출근길에 생각나는 사람들에게 안부 전화를 걸기로 결심했고, 그걸 실천한 거란다. 아마도 엄지와 참새와 봄날과 빨간여우와 별똥과 개구리 등 동식물과 천체 기후를 망라한 친구들이 딸기의 아침 안부 전화를 받고는 나처럼 ‘그런데 용건은?’이라고 바보처럼 물었을 게다. 그러고는 우리가 서로에게 상쾌한 아침 인사를 건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용건이 된다는 걸 새삼 깨달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덤덤한 안부가 다름 아닌 그립다는 말이었음도. 한때 우리들의 마을을 꿈꿨다. 잎새와 심지와 감자와 감자꽃, 잡초 모시나비 야화 누렁소 쌈지 꽁지머리 깻잎 따위의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며 함께 일하고 밥해 먹으며 살아가는 마을을 꿈꿨다. 가평의 아름다운 개울가 늙은 복숭아나무들 옆에서 서툰 농사를 짓고 백명분의 밥과 참을 만든 날들이 있었다. 아이들은 온몸에 흙을 묻히고 몰려다녔다. 완벽하게 맘에 드는 마을 터를 잡겠다며 여러 대의 차에 나눠 타고 전국을 쏘다닐 때 우리들은 얼마나 행복했던지. 우리는 옹긋옹긋 솟은 소박한 집에서 버섯모양 탁자를 놓고 모여 앉아 노래하며 살고 싶었다. 우리가 꿈꿨던 것은 아마도 그런 스머프마을 같은 곳이었다. 거기서라면 자폐나 뇌병변 장애가 있는 누구도 스스로를 장애인으로 호명하지 않고 살 수 있으리라. 엄지의 아이도 감자네 아이도 마을 모두가 키워냈으리라(마을책임제다!). “깻잎, 걱정하지 말고 죽어도 돼, 전나무는 우리랑 같이 살면 되니까.” 막걸리 기운에 꺼이꺼이 울던 깻잎에게 이 말은 세상에서 가장 큰 위로였다. 우리가 온전한 우리 마을을 짓지 못한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만날 때마다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보지만, 서로가 잘 안다. 머릿속에 떠올리는 그 모든 것들이 이유였다는 걸. 그래서 우리는 아직까지도 우리 마음속에만 마을을 지어놓고 그것만으로도 부자마을 사람들인 양 굴지만, 헛헛하다. 이제 다시 마을만들기를 꿈꿀 수 있을까. 술자리가 끝날 때마다 한마디씩 꼭 하는 품을 보면 다들 어렴풋이 그 마을을 떠올리고 있는 게 틀림없다. 헝크러진 삶의 자락들을 서로 보듬어주며 살다가 떠나가면 잘 보내주고, 남겨진 가족이며 벗이며 서로 챙겨주며 살아가는 마을 말이다. 딸기와 용건 없는 안부 전화를 마치면서 건강하게 잘 살자고 인사했다. 지난 4월27일 이후 누군가와 인사를 나눌 때면 꼭 그렇게 인사한다. 건강하게 오래 살면서 좋은 세상을 더 누리자는 축원이다. 기차 타고 북녘땅 거쳐서 유럽까지 오가면서 터를 보고 다니려면 이제부터라도 새 몸뚱이로 시작하는 양 건강해야 한다. 딸기도 요새 그렇게 인사한단다. 이 철딱서니 없는 것들, 우리는 이러면서 웃었다. 좋은 것에 대한 상상, 아름다운 것에 대한 희망은 이런 것이다. ‘우리’를 살맛 나게 하는 것.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놓고 싸우는 게 아니라 좋은 것과 더 좋은 것을 놓고 겨루는 세상에 대한 상상이라니!
칼럼 |
[삶의 창] 용건 없는 안부 전화 / 김종옥 |
작가·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 이른 아침, 딸기가 전화를 걸었다. 그저 안부를 물으려고 했단다. (대체 뭔 일일까?) 날씨 좋고 시절 좋고, 가내 두루두루 무고하단다. (일상은 평안하군, 그런데 용건은?) 한반도에 평화가 온다니 시골에서도 기분들이 좋단다. (그렇지, 나도 요새 이유없이 기운이 펄펄 나, 그런데 정말 용건은?) 용건이 그거란다. 안부를 묻는 거, 그것처럼 긴한 용건이 어디 있어, 라고 딸기가 웃으며 말했다. 얼마 전부터 아침 출근길에 생각나는 사람들에게 안부 전화를 걸기로 결심했고, 그걸 실천한 거란다. 아마도 엄지와 참새와 봄날과 빨간여우와 별똥과 개구리 등 동식물과 천체 기후를 망라한 친구들이 딸기의 아침 안부 전화를 받고는 나처럼 ‘그런데 용건은?’이라고 바보처럼 물었을 게다. 그러고는 우리가 서로에게 상쾌한 아침 인사를 건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용건이 된다는 걸 새삼 깨달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덤덤한 안부가 다름 아닌 그립다는 말이었음도. 한때 우리들의 마을을 꿈꿨다. 잎새와 심지와 감자와 감자꽃, 잡초 모시나비 야화 누렁소 쌈지 꽁지머리 깻잎 따위의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며 함께 일하고 밥해 먹으며 살아가는 마을을 꿈꿨다. 가평의 아름다운 개울가 늙은 복숭아나무들 옆에서 서툰 농사를 짓고 백명분의 밥과 참을 만든 날들이 있었다. 아이들은 온몸에 흙을 묻히고 몰려다녔다. 완벽하게 맘에 드는 마을 터를 잡겠다며 여러 대의 차에 나눠 타고 전국을 쏘다닐 때 우리들은 얼마나 행복했던지. 우리는 옹긋옹긋 솟은 소박한 집에서 버섯모양 탁자를 놓고 모여 앉아 노래하며 살고 싶었다. 우리가 꿈꿨던 것은 아마도 그런 스머프마을 같은 곳이었다. 거기서라면 자폐나 뇌병변 장애가 있는 누구도 스스로를 장애인으로 호명하지 않고 살 수 있으리라. 엄지의 아이도 감자네 아이도 마을 모두가 키워냈으리라(마을책임제다!). “깻잎, 걱정하지 말고 죽어도 돼, 전나무는 우리랑 같이 살면 되니까.” 막걸리 기운에 꺼이꺼이 울던 깻잎에게 이 말은 세상에서 가장 큰 위로였다. 우리가 온전한 우리 마을을 짓지 못한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만날 때마다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보지만, 서로가 잘 안다. 머릿속에 떠올리는 그 모든 것들이 이유였다는 걸. 그래서 우리는 아직까지도 우리 마음속에만 마을을 지어놓고 그것만으로도 부자마을 사람들인 양 굴지만, 헛헛하다. 이제 다시 마을만들기를 꿈꿀 수 있을까. 술자리가 끝날 때마다 한마디씩 꼭 하는 품을 보면 다들 어렴풋이 그 마을을 떠올리고 있는 게 틀림없다. 헝크러진 삶의 자락들을 서로 보듬어주며 살다가 떠나가면 잘 보내주고, 남겨진 가족이며 벗이며 서로 챙겨주며 살아가는 마을 말이다. 딸기와 용건 없는 안부 전화를 마치면서 건강하게 잘 살자고 인사했다. 지난 4월27일 이후 누군가와 인사를 나눌 때면 꼭 그렇게 인사한다. 건강하게 오래 살면서 좋은 세상을 더 누리자는 축원이다. 기차 타고 북녘땅 거쳐서 유럽까지 오가면서 터를 보고 다니려면 이제부터라도 새 몸뚱이로 시작하는 양 건강해야 한다. 딸기도 요새 그렇게 인사한단다. 이 철딱서니 없는 것들, 우리는 이러면서 웃었다. 좋은 것에 대한 상상, 아름다운 것에 대한 희망은 이런 것이다. ‘우리’를 살맛 나게 하는 것.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놓고 싸우는 게 아니라 좋은 것과 더 좋은 것을 놓고 겨루는 세상에 대한 상상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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