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책 계약을 마친 날 출판사 대표가 페이스북을 해보라고 권했다. 난 도리질했다. 페이스북은 자기과시나 빤한 논평이 오가는 ‘외로운 현대인’의 집합소 같았다. 대표는 직접 해보면 다른 재미가 있다고, 무엇보다 글을 공유할 수 있어 작가에게 좋다고 설득했다. 그런데도 꾸역꾸역 핑계를 만들어내는 내게 한마디 던졌다. “나이 든 사람은 이게 문제라니까요.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만두면 되죠. 그게 뭐라고, 왜 하기도 전에 걱정하고 판단해요.” 요즘 말로 ‘팩트 폭격’을 당하고 페북 활동을 개시한 게 3년 전이다. 먼발치에서는 셀카와 음식, 여행 사진만 보이더니 몸을 들여놓고 나자 페북이 아니면 몰랐을 이야기와 사람들이 넘쳐났다. 성판매 여성들이 직접 글을 쓰는 페이지와 청소년인권단체 소식도 받아보고, 반려동물 영상을 제공하는 ‘디스펫치’도 구독했다. 좋아서 좋아요를 눌렀더니 좋은 것들로만 세계가 짜였다. 신속한 뉴스, 알찬 생활정보, 다정한 친구가 항시 대기 중인 곳. 그곳은 외따로 사는 생활인의 공동체였다. 블로그를 개설한 것은 십년 전이다. 그때도 친구가 등을 떠밀었다. 인터뷰하고 올 때마다 감동했다고 호들갑 떠는 내게 그 귀중한 경험을 공적인 장에서 나누라고 조언했다. 그때 역시 ‘나이 든 사람’이었던 나는, 블로그가 혼자 입주해야 하는 빈집처럼 막막했다. 이를 딱하게 여긴 후배가 “어렵지 않다”며 초기 세팅을 맡아주었다. 처음엔 쓴 글들이 있어서 블로그를 시작했는데 블로그가 있으니까 자꾸만 쓰게 됐다. 하루하루 쌓인 기록물이 수년 뒤 한권의 책이 되었다. 이십대의 피시통신이 그랬듯이, 삼십대의 블로그, 사십대의 페이스북은 내게 삶을 가르치는 학교였다. 이해할 수 없는 말들, 알지 못하는 세계가 수시로 출몰하여 나를 곤혹에 빠뜨렸다. “우리의 언어 자원은 타자의 언어를 받아들임으로써만 풍요로워진다”고 우치다 다쓰루가 말했는데, 소셜미디어 환경은 가장 생생한 타자의 언어-감각을 제공했다. 나를 ‘쓰고 있는 사람’에서 ‘계속 쓰는 사람’으로 살게 했다. 지금 와 생각하면, 얼마나 올드한 당신이었나, 나는. 해보지도 않고 단정 지었던 말들이 떠올라 나 혼자 머쓱하다. 해봐서 아는데를 넘어 해보지 않고도 아는 척하는 사람이 되는 것, 몸보다 말이 나아가고, 살아내기보다 판단하기를 즐기는 것, 그게 바로 나이 듦의 징조임을 일깨워준 젊은 동료들이 귀인이다. 일전에 출판업 종사자들 인터뷰집을 작업할 때 들은 얘기다. 출판시장 규모가 줄어든 지 오래고, 특히 2000년대 이후 주목받는 소장파 저자들 책이 일정 규모 이상 팔리지 않는데, 그들의 책을 소위 ‘선생님’ 세대가 구매하지 않아서라고 분석했다. 즉 구매자들이 자기보다 어린 저자의 책은 사지 않는단다. 가만 보니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이와 학식이 비례한다는 권위주의 인식에 지배받았다. 그래서 이젠 부러 젊은 작가 위주로, 이왕이면 여성 작가 우선으로 챙겨 읽는다. 책꽂이의 성비 균형을 맞추고, 편협한 정신에 갇히지 않기 위함이다. “쌤, 아직도 인스타 안 해요?” 주변에서 자꾸 옆구리를 찌른다. 인스타그램에서 활동하는 젊은 작가들은 밤 시간에 ‘라이브 생중계’로 팔로어인 독자들에게 자기 책을 읽어준단다. 오, 그건 길 위의 철학자 콘셉트가 아닌가. 자기표현 욕구를 자유로이 드러내고, 최상의 이미지로 자기 서사를 전시하고, 제 창작물을 나누기 위해 기꺼이 타인에게 말 거는 종족들이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계속 나이 들 사람인 내가 스마트폰 건너편 이웃에게 내 목소리로 내 글을 읽어줄 날이 올 것인가.
칼럼 |
[삶의 창] 올드한 당신 / 은유 |
작가 책 계약을 마친 날 출판사 대표가 페이스북을 해보라고 권했다. 난 도리질했다. 페이스북은 자기과시나 빤한 논평이 오가는 ‘외로운 현대인’의 집합소 같았다. 대표는 직접 해보면 다른 재미가 있다고, 무엇보다 글을 공유할 수 있어 작가에게 좋다고 설득했다. 그런데도 꾸역꾸역 핑계를 만들어내는 내게 한마디 던졌다. “나이 든 사람은 이게 문제라니까요.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만두면 되죠. 그게 뭐라고, 왜 하기도 전에 걱정하고 판단해요.” 요즘 말로 ‘팩트 폭격’을 당하고 페북 활동을 개시한 게 3년 전이다. 먼발치에서는 셀카와 음식, 여행 사진만 보이더니 몸을 들여놓고 나자 페북이 아니면 몰랐을 이야기와 사람들이 넘쳐났다. 성판매 여성들이 직접 글을 쓰는 페이지와 청소년인권단체 소식도 받아보고, 반려동물 영상을 제공하는 ‘디스펫치’도 구독했다. 좋아서 좋아요를 눌렀더니 좋은 것들로만 세계가 짜였다. 신속한 뉴스, 알찬 생활정보, 다정한 친구가 항시 대기 중인 곳. 그곳은 외따로 사는 생활인의 공동체였다. 블로그를 개설한 것은 십년 전이다. 그때도 친구가 등을 떠밀었다. 인터뷰하고 올 때마다 감동했다고 호들갑 떠는 내게 그 귀중한 경험을 공적인 장에서 나누라고 조언했다. 그때 역시 ‘나이 든 사람’이었던 나는, 블로그가 혼자 입주해야 하는 빈집처럼 막막했다. 이를 딱하게 여긴 후배가 “어렵지 않다”며 초기 세팅을 맡아주었다. 처음엔 쓴 글들이 있어서 블로그를 시작했는데 블로그가 있으니까 자꾸만 쓰게 됐다. 하루하루 쌓인 기록물이 수년 뒤 한권의 책이 되었다. 이십대의 피시통신이 그랬듯이, 삼십대의 블로그, 사십대의 페이스북은 내게 삶을 가르치는 학교였다. 이해할 수 없는 말들, 알지 못하는 세계가 수시로 출몰하여 나를 곤혹에 빠뜨렸다. “우리의 언어 자원은 타자의 언어를 받아들임으로써만 풍요로워진다”고 우치다 다쓰루가 말했는데, 소셜미디어 환경은 가장 생생한 타자의 언어-감각을 제공했다. 나를 ‘쓰고 있는 사람’에서 ‘계속 쓰는 사람’으로 살게 했다. 지금 와 생각하면, 얼마나 올드한 당신이었나, 나는. 해보지도 않고 단정 지었던 말들이 떠올라 나 혼자 머쓱하다. 해봐서 아는데를 넘어 해보지 않고도 아는 척하는 사람이 되는 것, 몸보다 말이 나아가고, 살아내기보다 판단하기를 즐기는 것, 그게 바로 나이 듦의 징조임을 일깨워준 젊은 동료들이 귀인이다. 일전에 출판업 종사자들 인터뷰집을 작업할 때 들은 얘기다. 출판시장 규모가 줄어든 지 오래고, 특히 2000년대 이후 주목받는 소장파 저자들 책이 일정 규모 이상 팔리지 않는데, 그들의 책을 소위 ‘선생님’ 세대가 구매하지 않아서라고 분석했다. 즉 구매자들이 자기보다 어린 저자의 책은 사지 않는단다. 가만 보니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이와 학식이 비례한다는 권위주의 인식에 지배받았다. 그래서 이젠 부러 젊은 작가 위주로, 이왕이면 여성 작가 우선으로 챙겨 읽는다. 책꽂이의 성비 균형을 맞추고, 편협한 정신에 갇히지 않기 위함이다. “쌤, 아직도 인스타 안 해요?” 주변에서 자꾸 옆구리를 찌른다. 인스타그램에서 활동하는 젊은 작가들은 밤 시간에 ‘라이브 생중계’로 팔로어인 독자들에게 자기 책을 읽어준단다. 오, 그건 길 위의 철학자 콘셉트가 아닌가. 자기표현 욕구를 자유로이 드러내고, 최상의 이미지로 자기 서사를 전시하고, 제 창작물을 나누기 위해 기꺼이 타인에게 말 거는 종족들이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계속 나이 들 사람인 내가 스마트폰 건너편 이웃에게 내 목소리로 내 글을 읽어줄 날이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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