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싱클레어> 편집장, 뮤지션 자신이 겪지 않은 일을 자신이 겪은 일처럼 생각하는 것이 꼭 공감은 아니다. 자신이 보지 않은 일을 자신이 본 일처럼 예를 드는 것도 진실에 다가가는 방법은 아니다. 지하철을 많이 타고 다니던 시절, 유난히 자주 들었던 증언들이 있다. 주로 시각장애인에 대한 것이었는데, 여러 증언이 있었지만 이 두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지하철에서 구걸하던 시각장애인이 누군가 갑자기 다가오자 움찔하더라. 둘째, 지하철에서 구걸하던 시각장애인이 한쪽 구석에서 선글라스를 벗고 유유히 걸어가더라. 그러니 결론은,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짜이니 돈을 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여러 경로를 통해 그 사람들 대부분이 사실은 공동체 생활을 하거나 가정을 꾸리고 있지만 구걸한 돈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알려졌음에도, 근거 없는 많은 증언들에 그 사실은 힘을 잃었고 주머니에서 500원짜리라도 하나 꺼내주는 사람에게는 증언자들이 몰려들었다. 최근 내가 유난히 많이 듣는 증언들이 있다. 주로 아이와 함께 오는 손님에 대한 증언인데 첫째, 아이들이 카페나 음식점에서 너무 떠들고 가만히 앉아 있지 않아 난리통이더라. 둘째, 그런 상황에서 부모들은 아무 역할을 하지 않고 핸드폰을 보거나 수다 떨며 아이들을 내버려두더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 증언들의 결론은 노키즈존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경주에는 노키즈존이 열풍이다. 경주의 명물거리인 황리단길은 어차피 손님이 넘치니 귀찮게 아이와 함께 오는 손님보다는 아이가 없는 ‘일반’ 손님만 받는 것이 분위기상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5살 큰딸을 데리고 경주 맛집으로 유명해진 밥집에 갔다가 퇴짜를 맞았다. 일부러 평일 한산한 시간에 찾아갔지만 아이들은 입장 자체가 되지 않는 노키즈존으로 변해 있었다. 몇번 가서 느긋하게 앉아 있던 근처 찻집도 입구에 노키즈존이라는 팻말을 걸어놓았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자연스럽게 앞의 증언들이 등장한다. 아이들이 가만히 앉아 있지 않아 다른 손님에게 방해가 되고, 뜨거운 음식이 있으니 위험하더라. 그런데 그 부모라는 사람들은 아이를 나무라기는커녕 주변에서 한마디 하면 되레 화를 내더라. 많은 증언은 몇 가지로 정리될 수 있을 정도로 닮아 있다. 사실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가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을까 살피랴,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들 진정시키랴, 우는 아이 달래랴,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후다닥 먹고, 아이가 먹다 바닥에 흘린 밥풀까지 물티슈로 깨끗이 정리하고 나가지만 이 사실은 그 많은 증언에 의해 힘을 잃는다. 그래서 노키즈존에 대한 문제 제기는 ‘일반인’과 가게 주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부모들의 징징거림으로 취급받는다. 개인의 경험이 모든 진실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건 극히 일부일 뿐이다. 그 일부를 통해서라도 진실에 다가가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직접 겪은 사람의 말은 그래서 소중한 증언이 된다. 그리고 그 증언들이 많아지고 다양해지면 변화가 생긴다. 내 생각이 의견이 되고, 다른 증언들과 만나고, 그렇게 의견이 변화하는 과정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자신이 겪지 않은 일을 자신이 겪은 일처럼 생각하는 것이 꼭 공감은 아니다. 공감은 증언의 가치를 인정하는 의견이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이 다시 시작된다고 한다. 증언자들은 목이 쉬어가고 있다.
칼럼 |
[삶의 창] 못 본 사람들의 증언 / 피터 김용진 |
월간 <싱클레어> 편집장, 뮤지션 자신이 겪지 않은 일을 자신이 겪은 일처럼 생각하는 것이 꼭 공감은 아니다. 자신이 보지 않은 일을 자신이 본 일처럼 예를 드는 것도 진실에 다가가는 방법은 아니다. 지하철을 많이 타고 다니던 시절, 유난히 자주 들었던 증언들이 있다. 주로 시각장애인에 대한 것이었는데, 여러 증언이 있었지만 이 두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지하철에서 구걸하던 시각장애인이 누군가 갑자기 다가오자 움찔하더라. 둘째, 지하철에서 구걸하던 시각장애인이 한쪽 구석에서 선글라스를 벗고 유유히 걸어가더라. 그러니 결론은,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짜이니 돈을 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여러 경로를 통해 그 사람들 대부분이 사실은 공동체 생활을 하거나 가정을 꾸리고 있지만 구걸한 돈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알려졌음에도, 근거 없는 많은 증언들에 그 사실은 힘을 잃었고 주머니에서 500원짜리라도 하나 꺼내주는 사람에게는 증언자들이 몰려들었다. 최근 내가 유난히 많이 듣는 증언들이 있다. 주로 아이와 함께 오는 손님에 대한 증언인데 첫째, 아이들이 카페나 음식점에서 너무 떠들고 가만히 앉아 있지 않아 난리통이더라. 둘째, 그런 상황에서 부모들은 아무 역할을 하지 않고 핸드폰을 보거나 수다 떨며 아이들을 내버려두더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 증언들의 결론은 노키즈존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경주에는 노키즈존이 열풍이다. 경주의 명물거리인 황리단길은 어차피 손님이 넘치니 귀찮게 아이와 함께 오는 손님보다는 아이가 없는 ‘일반’ 손님만 받는 것이 분위기상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5살 큰딸을 데리고 경주 맛집으로 유명해진 밥집에 갔다가 퇴짜를 맞았다. 일부러 평일 한산한 시간에 찾아갔지만 아이들은 입장 자체가 되지 않는 노키즈존으로 변해 있었다. 몇번 가서 느긋하게 앉아 있던 근처 찻집도 입구에 노키즈존이라는 팻말을 걸어놓았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자연스럽게 앞의 증언들이 등장한다. 아이들이 가만히 앉아 있지 않아 다른 손님에게 방해가 되고, 뜨거운 음식이 있으니 위험하더라. 그런데 그 부모라는 사람들은 아이를 나무라기는커녕 주변에서 한마디 하면 되레 화를 내더라. 많은 증언은 몇 가지로 정리될 수 있을 정도로 닮아 있다. 사실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가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을까 살피랴,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들 진정시키랴, 우는 아이 달래랴,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후다닥 먹고, 아이가 먹다 바닥에 흘린 밥풀까지 물티슈로 깨끗이 정리하고 나가지만 이 사실은 그 많은 증언에 의해 힘을 잃는다. 그래서 노키즈존에 대한 문제 제기는 ‘일반인’과 가게 주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부모들의 징징거림으로 취급받는다. 개인의 경험이 모든 진실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건 극히 일부일 뿐이다. 그 일부를 통해서라도 진실에 다가가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직접 겪은 사람의 말은 그래서 소중한 증언이 된다. 그리고 그 증언들이 많아지고 다양해지면 변화가 생긴다. 내 생각이 의견이 되고, 다른 증언들과 만나고, 그렇게 의견이 변화하는 과정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자신이 겪지 않은 일을 자신이 겪은 일처럼 생각하는 것이 꼭 공감은 아니다. 공감은 증언의 가치를 인정하는 의견이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이 다시 시작된다고 한다. 증언자들은 목이 쉬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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