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싱클레어> 편집장, 뮤지션 경주 불국동에 살면서 처음 느낀 어려움은 자동차 깜빡이(방향지시등) 문제였다. 자동차가 많지 않고 주차공간도 여유 있어서 서울 연남동에 살 때보다 훨씬 쾌적하게 운전을 할 수 있었는데, 대신 깜빡이를 잊고 운전하는 버릇이 생겨버린 거다. 동네에서 다닐 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문제는 내가 동네에서만 운전하는 게 아니라 가끔 울산, 대구 등 옆 도시로 나가서도 그 버릇이 이어진다는 데 있었다. 몇번의 위험한 순간을 겪고 나서는 스스로 ‘깜빡이 켜기 운동’을 하게 되었다. 한밤중 아무도 없는 시골길을 우회전할 때도 오른쪽 깜빡이. 아침 일찍 작업실에 오면서도 오른쪽, 왼쪽 깜빡이를 ‘굳이’ 켰다. 음악을 만들고, 잡지를 편집하며 살아왔는데 크게 반향을 일으킨 적은 없었다. 잡지는 올해로 18주년이 되었고, 음악 앨범은 4장을 냈는데 친조카조차 삼촌이 가수라는 말에 의문을 제기한다.(조카는 ‘티브이에 나와야 가수’라는 명료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결국 성공하지 못했는데 왜 이 일을 계속하는지’ 예리하게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각자 살고 싶은 삶이 있잖아요. 처음엔 그게 뭔지 잘 모르지만 그저 계속하게 되는 게 있더군요. 제게는 그게 노래하고 글 쓰고 사람들과 모여서 책 읽고 이야기하는 일이었어요. 누가 부추기지 않아도 그걸 하고 있더라구요. 그러다 어느 순간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구나 하고 인정하게 되었어요. 그 이후에는 어떻게 하면 이걸 계속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지요. 잘 되건 안 되건 저는 계속, 하고 싶은 일을 찾고 또 지속하는 데 지금까지 한 시도들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세상을 바꾸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저 하나는 지켰다고 생각해요. 각자 자신을 지키시길. 빼앗기지 마시길.” 돌아보면 음악을 한다, 글을 쓴다, 독서모임을 만들어 책을 읽는다 하면 많은 사람들이 애정의 강도와 비례하는 정도로 말리곤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건 더하다. 가장 듣기 좋았던 말은 ‘취미로 하면 스트레스 받지 않고 할 수 있을 텐데’였는데 어쨌든 요지는 먹고살기 힘든 일이라는 거였다. 내가 꽤 오랫동안 이 일로 먹고살아온 사람이라는 사실은 잊고 만고불변의 진리를 이야기하듯 한다. 어떤 사람은 할 거면 이런 이런 식으로 해야 판도 크게 벌이고 ‘성공’할 수 있다고 예까지 들어가며 이야기하곤 한다. 밴드가 성공하는 법, 글쓰기로 성공하는 법, 독서모임을 활발하게 만드는 방법. 수많은 방법을 들었다. 아, 성과가 나지 않으면 과감히 옮겨 탈 수 있어야 한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새겨들으면 좋은 말이겠지만 그 말들은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가고 있다. 바로 ‘성과 있음’이다. 그게 없으면 내게 아무리 귀중한 것이어도 독이고, 그것을 위해서는 생판 모르는 분야라도 뛰어들어야 한다. 결국 시대와 상황의 흐름을 읽고, 되도록 흐름을 따르라는 말이다. 나에게 내가 살아온 삶은 나를 지키기 위한 노력들이었다. 대단할 것 없는 기본원칙들, 그 연장선에 자신의 꿈과 생활이 펼쳐진다. 그냥 흐름에 맡겨두면 나 자신조차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게 된다. 마음이 가는 대로 두는 것도 그냥 방치일 뿐이다. 한달 만에 뺏긴 습관은 회복하는 데 몇달의 ‘운동’이 필요했다. 산 너머 핵발전소에는 집회가 한창이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중단 반대’ 집회다. 무엇이 자신을 지켜줄 것인가 생각해야 한다. 핵발전소 직원들도, 주민들도, 10㎞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우리들도, 빼앗기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과연 우리가 그걸 빼앗기면 몇개월 만에 회복할 수 있을까.
칼럼 |
[삶의 창] 빼앗기지 마 / 피터 김용진 |
월간 <싱클레어> 편집장, 뮤지션 경주 불국동에 살면서 처음 느낀 어려움은 자동차 깜빡이(방향지시등) 문제였다. 자동차가 많지 않고 주차공간도 여유 있어서 서울 연남동에 살 때보다 훨씬 쾌적하게 운전을 할 수 있었는데, 대신 깜빡이를 잊고 운전하는 버릇이 생겨버린 거다. 동네에서 다닐 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문제는 내가 동네에서만 운전하는 게 아니라 가끔 울산, 대구 등 옆 도시로 나가서도 그 버릇이 이어진다는 데 있었다. 몇번의 위험한 순간을 겪고 나서는 스스로 ‘깜빡이 켜기 운동’을 하게 되었다. 한밤중 아무도 없는 시골길을 우회전할 때도 오른쪽 깜빡이. 아침 일찍 작업실에 오면서도 오른쪽, 왼쪽 깜빡이를 ‘굳이’ 켰다. 음악을 만들고, 잡지를 편집하며 살아왔는데 크게 반향을 일으킨 적은 없었다. 잡지는 올해로 18주년이 되었고, 음악 앨범은 4장을 냈는데 친조카조차 삼촌이 가수라는 말에 의문을 제기한다.(조카는 ‘티브이에 나와야 가수’라는 명료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결국 성공하지 못했는데 왜 이 일을 계속하는지’ 예리하게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각자 살고 싶은 삶이 있잖아요. 처음엔 그게 뭔지 잘 모르지만 그저 계속하게 되는 게 있더군요. 제게는 그게 노래하고 글 쓰고 사람들과 모여서 책 읽고 이야기하는 일이었어요. 누가 부추기지 않아도 그걸 하고 있더라구요. 그러다 어느 순간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구나 하고 인정하게 되었어요. 그 이후에는 어떻게 하면 이걸 계속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지요. 잘 되건 안 되건 저는 계속, 하고 싶은 일을 찾고 또 지속하는 데 지금까지 한 시도들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세상을 바꾸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저 하나는 지켰다고 생각해요. 각자 자신을 지키시길. 빼앗기지 마시길.” 돌아보면 음악을 한다, 글을 쓴다, 독서모임을 만들어 책을 읽는다 하면 많은 사람들이 애정의 강도와 비례하는 정도로 말리곤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건 더하다. 가장 듣기 좋았던 말은 ‘취미로 하면 스트레스 받지 않고 할 수 있을 텐데’였는데 어쨌든 요지는 먹고살기 힘든 일이라는 거였다. 내가 꽤 오랫동안 이 일로 먹고살아온 사람이라는 사실은 잊고 만고불변의 진리를 이야기하듯 한다. 어떤 사람은 할 거면 이런 이런 식으로 해야 판도 크게 벌이고 ‘성공’할 수 있다고 예까지 들어가며 이야기하곤 한다. 밴드가 성공하는 법, 글쓰기로 성공하는 법, 독서모임을 활발하게 만드는 방법. 수많은 방법을 들었다. 아, 성과가 나지 않으면 과감히 옮겨 탈 수 있어야 한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새겨들으면 좋은 말이겠지만 그 말들은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가고 있다. 바로 ‘성과 있음’이다. 그게 없으면 내게 아무리 귀중한 것이어도 독이고, 그것을 위해서는 생판 모르는 분야라도 뛰어들어야 한다. 결국 시대와 상황의 흐름을 읽고, 되도록 흐름을 따르라는 말이다. 나에게 내가 살아온 삶은 나를 지키기 위한 노력들이었다. 대단할 것 없는 기본원칙들, 그 연장선에 자신의 꿈과 생활이 펼쳐진다. 그냥 흐름에 맡겨두면 나 자신조차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게 된다. 마음이 가는 대로 두는 것도 그냥 방치일 뿐이다. 한달 만에 뺏긴 습관은 회복하는 데 몇달의 ‘운동’이 필요했다. 산 너머 핵발전소에는 집회가 한창이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중단 반대’ 집회다. 무엇이 자신을 지켜줄 것인가 생각해야 한다. 핵발전소 직원들도, 주민들도, 10㎞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우리들도, 빼앗기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과연 우리가 그걸 빼앗기면 몇개월 만에 회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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