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5.27 18:48
수정 : 2016.05.27 21:50
잠자는 둘째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본다. 아직 어리고 연한 얼굴이다. 뺨은 부드럽고 눈썹은 가지런하다. 그 옆에 눕기만 해도 마음이 숨을 고른다. 그 나이 때를 돌이켜 생각하니, 웬걸 유년이 평화롭기만 할까 싶지만, 아이가 자면서 방긋 웃기라도 하면 마음은 발돋움해 둥실 떠오른다. 몇 해 뒤면 검실검실 거칠어지겠지. 보채는 걸 간신히 재워놓곤 자는 얼굴이 어여뻐 간질간질 깨워버리고 싶었던 시절이 영영 가 버릴 테지.
성년이 된 누군가의 자는 얼굴을 골똘히 본 적 또한 다들 있으리라. 연애 시절이나 신혼 무렵, 저 얼굴 뒤엔 뭐가 있을까 궁금해하면서. 어른의 얼굴은 아이와 달라서 잠에 빠졌을 때도 마냥 평화롭진 않다. 입 벌리고 찌푸리고 옅게 코를 곤다. 무방비한 얼굴이다. 보고 있으면 슬픈 듯도 화난 듯도 사랑스러운 듯도 밉살맞은 듯도 싶다. 나도 저렇겠지. 그러니 잠자는 얼굴을 보이면 약점 잡히는 양 느끼는 것도 당연하리라.
소설이나 만화 속에서 고수들은 잠마저 말끔했다. 깊이 잠들면서도 온 신경을 깨워두어 자객의 습격 따위는 간단히 처리하곤 했다. <토지>에서 날렵하게 자객의 목을 누를 때 김환은 얼마나 근사했던가. 자는 건 먹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물성의 남은 증거라, 온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선 줄이고 깎아내야 했다. 찻간에서 어쩔 수 없이 잠을 청할 때면 눈매와 입매를 긴장시켰다. 다 지난 일이라 이젠 어디서든 정신없이 졸아대지만.
고등생물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라는데 왜 그리 잠을 멸시했을까. 진화한 생물일수록 뇌를 완전히 쉬고 깊은 잠에 빠진다는데 말이다. 뇌가 완전히 잠든 정수면 상태가 지속돼야 뇌 작용이 활발한 아르이엠(REM), 즉 역설수면 상태로 접어들 수 있다는 게 통설이라는데. 눈동자만 빠르게 움직이는 이 잠 속에서 뇌는 깨어 있던 동안의 자극을 정리하고, 꿈이라 불리는 기묘한 현상을 우리에게 제공한다고 한다.
<아이다호>에서 리버 피닉스는 갑작스레 역설수면 상태에 빠져드는 기면발작증 환자였지. 현실 속에선 치명적인 병이련만, 영화 속 아무데서나 쓰러지는 리버 피닉스는 애처롭고 아름다웠다. <잠자는 미녀>에서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그려낸 젊은 여성들도 잠 속에서 아름답고 무력(無力)으로써 주변을 정결케 하는 그런 존재들이었나? 노년의 에로티시즘이라 하지만 소설을 읽고 나서 기억나는 건 아가씨들의 새근거리는 호흡뿐인 걸.
수면제를 먹고 관음의 대상이 된 아가씨들에 이르니 생각이 헝클어진다. <잠자는 미녀> 속 아가씨들의 잠은 너무나 깊고 평안하고 아름다워, 수면제니 성매매 같은 설정을 농담처럼 들리게 하긴 하지만. 근대 초기 추리소설의 트릭과 몽유병자의 법적 책임으로까지 번지려는 공상을 겨우 잡아채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에 묶어둔다.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이 책이 말 그대로 저자 카를 힐티의 불면증에서 비롯된 소산임을 알게 된 것이 불과 며칠 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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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보드래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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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도 불면증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이 적잖다. 한때의 기준에 의하면 설마 나이 들수록 동물성을 벗어던져 그런가. 피식자는 얕은 잠을 자주 깨지만 포식자는 긴 잠을 잔다는데, 다들 무엇에 쫓기나. ‘네 시간 수면법’ 같은 테크닉이 유행하는 중에 젊은이들의 잠은 편안할까. 고른 호흡을 유지하고 살자면 뇌에도 흠뻑 쉴 시간을 줘야 할 텐데. 순결하고도 무방비한 잠자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할 텐데. 인간이란 매일 잠을 자야 하는 동물로서 타인에의 신뢰와 의존을 익혀온 것일지도 모르거늘. 곁에서 잠자는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권보드래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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