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밥을 먹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친구가 말했다. 요즘엔 어떤 책을 번역하니? 그동안 하는 일이 바뀌었다고 몇 번 얘기해줬는데도 친구는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이렇게 묻고 있었다. 나는 번역일을 그만두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다시 한 번 말해주었다. 친구는 아, 그랬었지, 하고 고개를 끄덕인 뒤 자신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그 친구가 하는 이야기를 주욱 따라가다가, 문득 우리가 늘 이런 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는 언제나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몰랐고, 그때마다 나는 몇 번씩 했던 이야기를 다시 해주어야 했다. 지금은 촉망받는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는 그 친구는 학창시절부터 똑똑하기로 유명했다. 그냥 공부만 잘하는 게 아니라 언변도 좋고 유머감각도 탁월한 ‘엄친딸’이었다. 희한한 것은, 친분을 이어온 역사가 20년이 넘었는데도 이 친구와 가깝다는 느낌이, 혹은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니 금세 답이 나왔다. 친구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줄 몰랐다. 자기 말을 논리정연하게 풀어나가는 재주는 있었지만 상대가 하는 말에 관심을 갖고 귀 기울일 줄은 몰랐다. 상대가 말을 시작하면 한동안 듣는 시늉을 하다가 중간에 끊고 자기 얘기로 방향을 돌렸고, 상대가 기분이 상해 더 이상 말을 하지 않는데도 그에 대한 자각 없이 헤어지는 순간까지 자기 얘기를 이어갔다. 식사가 끝나고 후식이 나오도록 유려하게 이어지는 친구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 친구는 다른 사람들하고 있을 때도 이럴까. 남편이나 아이들과 있을 때는 말을 좀 들어줄까. 진심으로 가깝게 지내고 의지하는 사람이 있을까. 어떻게 해야 이 친구가 내 말을, 단 한순간만이라도, 들을 수 있게 될까. 이런 사람이… 나랏일을 하면 어떻게 될까. 생각이 이에 미치자, 바로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동시에 그 사람과 관련된 여러 사건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일방적으로 선포된 국정 교과서 방침, 70대 농민을 가격해 의식불명으로 만든 직사 물대포, 인권의 날에 단 한 명의 노조 지도자를 에워쌌던 칠천의 경찰병력, 약속된 지원을 받지 못해 혼란과 불신으로 점철된 교육현장…. 그리고 알게 되었다. 지금 내가 견디고 있는 순간이 근본적으로 그 장면들과 같은 범주에 속하는 것임을. 10대나 20대 때, 나는 남의 말을 듣지 못하는 사람에게 가혹한 편이었다. 될 수 있으면 피해 가자는 게 대처 방법의 전부였다. 나이가 들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 왜 타인과 생각을 나누지 못하게 됐는지 궁금했고,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제넘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결국 가엾은 사람이구나. 돌봐주고 치료해주어야 하는.
정아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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