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관심이 생겨 철학 공부를 시작했다. 유명한 철학서 몇 권을 사서 읽는데, 뜻은 모르면서 글자만 읽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차 저작을 먼저 읽으면 좀 나을까 싶어 이 책 저 책 기웃거리다가, 철학과가 있는 대학 검색에 들어갔다. 아이 둘을 키우는 신분이라 시간이나 금전상의 제약이 많은 나는 입학 조건에서부터 등록금 액수, 커리큘럼, 교수진, 졸업 요건 등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검색을 시작한 지 삼십분도 지나지 않아 대학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백만원이 넘어가는 등록금과 까다로운 입학 조건이 눈을 부릅뜨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내 등을 떠민 것은 정해진 ‘영어전용 강의’를 필수로 이수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재학 기간에 토플이나 토익 시험을 쳐서 일정 점수 이상을 넘어야 졸업이 가능하다는 조건도 확인사살하듯 따라붙었다. 경영학을 변형시킨 취업 대비 강의를 필수과목으로 넣어놓은 대학도 있었다. 영어와 취업 대비 강의를 들어야만 철학을 배울 수 있다니. 나는 깨끗이 대학을 잊기로 했다. 다시 독학의 세계로 돌아가 읽어도 읽어도 가 닿을 수 없는 철학책을 붙들고 혼자 끙끙거리던 어느 날, 혹시나 싶어 붙잡고 있던 철학책 저자의 이름을 인터넷에서 검색해보았다. 잠깐의 시간이 흐른 뒤, 그 이름으로 개설된 강좌 몇 개가 화면에 주르륵 펼쳐졌다. 우와. 나는 입을 벌린 채 나열된 항목들을 다급하게 클릭했다. 있었구나! 그렇게 찾은 강좌는 서울 남산 자락의 어느 시장통 고깃집 밑에서 열리고 있었다. 함께 밥을 해 먹고 함께 공부한다는 ‘연구공동체’가 마련한 강좌였다. 토요일 오후, 마을버스를 타고 언덕을 굽이굽이 돌아 들어가야 나오는 그곳을 겨우 찾아갔을 때,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은 책이 잔뜩 꽂힌 낡은 책꽂이와 엉킨 전깃줄이 풍경의 윗부분을 가차없이 가로지르는 창문, 허름한 찬장에 빼곡히 박힌 머그컵과 차통들, 각기 다른 모양의 책상과 의자들이 널려 있는 모습이었다. 이런 곳에서 수업을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아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가로로 넓은 그 어수선한 공간 외에 다른 공간은 보이지 않았다.
정아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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