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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5.05 17:44 수정 : 2010.05.08 14:56

연애는 단막극…결혼은 연속극

[매거진 esc]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연애와 결혼은 어떻게 다른지 비유적으로 설명해주세요

우물쭈물하다 벌써 만 3년이다. esc 창간 때부터 조잘댔더니 이제 구라도 바닥나 얄팍한 동어반복에 스스로 계면쩍다. 하여 우격다짐과 몸빵으로 이어온 본 야메 상담, 여기서 맺을까 한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한 편으로 뽑기엔 뭔가 ‘얄상’해 제쳐뒀으나 그렇다고 또 그냥 묻고 떠나기는 고관절이 머뭇거리는, 자투리 상담 몇 개 간단정리 좀 하고 가련다.

Q 1. 연애와 결혼은 얼마나 다를까요? 20대 초반인 저에게 확 와닿게 비유적으로 설명을 좀 해주세요. 그리고 각각 가장 필요로 하는 자질은 어떤 걸까요?

A 연애는 제아무리 치열해봐야 당일 에피소드는 당일 종료되는 단막극이다. 주제는 언제나 단 하나. 뭐, 사랑이지. 에피소드 유형에 따라서는 ‘투 비 컨티뉴드’되기도 하나 기본적으로 다음날은 또 다음날의 에피소드가 펼쳐지게 되어 있다. 스킨십의 진도와 미래에 대한 합의 정도에 따라 관계가 일정 정도의 변곡점을 지나면 아예 별도의 시즌이 새로이 전개되기도 하나, 단막극이란 본질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결혼은 매일의 에피소드가 따로 존재하기는커녕 막간도 없고 주제도 없고 끝도 없고 돌릴 채널도 없는, 무한재방 연속극이다. 하여 연애가 일신우일신의 에피소드를 위해 낭만적, 육체적, 정서적, 지적 교감능력과 상상력, 순발력, 공감각, 감수성 등을 동시에 필요로 한다면 결혼이 요구하는 가장 중요한 자질은, 맷집 되겠다.

Q 2. 어른이 되려면 자기객관화가 중요하고 그러자면 시니컬하지 말고 시큰둥하라 했는데 둘 다 결국 냉소적인 거 아닌가요? 차이가 잘 이해 안 됩니다.

A 시니컬과 시큰둥, 둘 다 차갑고 부정적인 거 아니냐. 아니다. 다르다. 아니 다른 정도가 아니라 정반대다. 시니컬, 이건 기본적으로 방어기제다. 상처받기 싫은 거다. 해서 항상 세상만사로부터 자신을 일정 거리 이상 떨어뜨려 놓는다. 그 복사에너지가 제 몸에 닿지 않도록. 그렇게 의도적으로 확보한 간격 덕에 비로소 매사를 차갑게 대면할 수가 있게 되는 거다. 그러니까 시니컬한 자들, 냉정한 게 아니고 실은 무서운 거다. 흥분과 기대가 실패와 좌절로 마무리된 경험을 반복하기 두려운 나머지, 아예 긍정적 전망을 스스로 절개해내는 정신적 외과수술로, 그로 인한 통증을 미리 소거하는 자기보호 수단이라고.

그렇게 시니컬이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하는 거라면, 시큰둥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하는 거다. 자신이라고 그 어떤 운명으로부터도 특별히 더 예외적일 수는 없다는 걸 묵묵히 수용하는 거다. 그 어떤 신에게, 제아무리 기도해도, 자기 하나를 위해 우주의 질서가 역행하는 일 따위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거라고. 그래서 통증이 없어진단 소리가 아니다. 당연히 그래도 아프다. 아프지 않은 게 아니라 슬프지 않은 거다. 제 운명이. 거기서 좌절과 차이가 난다. 그렇게 자기 자신으로부터 간격을 만들어 스스로를 시큰둥하게 바라볼 수 있는 자만이, 자기객관화에 도달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지성은 출발하는 거다.

Q 3. 유난히 저와 친했던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매일 웁니다. 어떻게 해야 이 끝없는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A 오래전 받아둔 몇 줄 되지 않는 이 질문, 답할 수가 없었다. 왜. 나도 몰라서. 이제 한마디 정도 할 수 있겠다 싶어 몇 줄 남긴다.

작년 여동생이 갑자기 세상을 떴다. 유별나게 살가웠던 것도 아닌데, 그 어떤 수로도 만회할 방도가 전무한 완전한 상실 앞에서는, 머리가 아니라 몸이 반응하더라. 식사를 거르는 것도 아닌데 살이 빠지더라. 한참 후에도 휴대폰을 꺼내들더라. 문뜩 건넬 말이 생각나서. 몇 초 후에야 깨닫더라. 이제 없다는 걸. 잠시 모든 게 멈추더라.

그렇게 겪고 보니 가까운 이들의 죽음은 극복하거나 하는 게 아니더라. 그저 다른 도리가 없어 익숙해지는 거더라. 그러니 한 가지만 기억하시라. 그 슬픔에 저항하지 마시라. 몸이 반응하는 만큼 충분히 내버려 두시라. 그래도 된다. 아니 그래야 한다.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Q 4. 결혼만 장점 있으란 법 있습니까. 아니 이혼이라고 장점 없으란 법 있습니까.

A 역대 날 가장 크게 웃게 만든 두 줄 메일이다. 아니 왜 나한테 화를 내고 지랄이야! 라며. 그렇다. 추에도 미가 있거늘. 먼저 결혼만의 장점이라면 이런 거다. 인생 흥망성쇠가 서로에게 불가불 연동되어 있다는 거. 하여 필연적으로 생성되는 연대의식. 사랑이고 나발이고 다 떠나 어쨌거나 사회경제적 운명공동체라는 사실에 기인한 그 동지적 연대감. 이거 단순 연애로는 획득불가한 거다. 그럼 이혼은. 이런 거. 어른의 지혜와 함께 다시 얻는 20대. 그리고 달라진 삶의 우선순위. 실제 나이가 몇이든 말이다.

PS. 절대치의 상담 메일이 공통분모로 안고 있던 큰 오해 하나 마지막으로 풀고 가자. 수많은 이들이 자신의 사랑은 상대가 어떤 사람이냐에 의해 결정될 거라 여긴다. 오해도 이런 오해가 없다. 사랑은 상대가 아니라 내가 누구냐에 달린 거다. 모두들, 건투를 빈다. 졸라.

김어준 딴지일보 종신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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