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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2.03 19:27 수정 : 2010.02.06 20:56

화도 안 내는 애인 답답해요

[매거진 esc]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남자의 침묵은 저항 아닌 투항…사랑 확신하면서도 불안하다면 본인 자존감 문제

지난 시간 이어 그동안 쌓였던 메일함 좀 털고 가자. 오늘은 연애 파트. 반복되는 가장 기본 사안으로다가.

Q 1. 1년차 애인과 많이 싸워요. 제게 무관심해서요. 애인은 저를 사랑합니다. 하지만 질투도 않고, 상관도 않아요. 저는 질투도 잘 하고 화도 잘 내는데. 사실 싸운 게 아니라 제가 일방적으로 화를 냈죠. 제가 화를 내면 애인은 말도 하지 않아요. 무시하는 건지. 늘 제가 먼저 미안하다 하면 그제야 나도 미안했다 그래요. 결국은 제가 엄청 화를 냈습니다. 뭐가 잘나서 나한테 이렇게 인색하냐며. 비참하기도 하고 외롭기도 해서 터진 겁니다. 그러면서도 고민이 됩니다. 그 사람은 저에게 사랑 말고는 아무것도 요구한 적이 없는데, 제가 이기적으로 강요하는 건 아닌지….

A 이거 남녀 짝짓기의 역사에서 족히 수만년은 되는 레퍼런스가 축적된 갈등 되겠다. 오해와 불안이 만들어내는, 너무나 전형적인 연애 트러블. 이 기회에 짚고 가자.

우선 오해부터. 당신 분노에 침묵으로 응하는 그 남자, 당신을 무시하거나 당신에게 무관심한 거냐. 그거, 아니라는 거. 수컷 뇌는 다른 수컷들과의 먹이경쟁과 교미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최적화되어 왔다. 상대에게 감정이입하고 공감하는 능력보단 상대를 제압해 밥과 짝을 쟁취하는 능력이 절실히 요구됐다. 자연스럽게 그들 언어도 그 필요가 지배했다. 하여 남자들에게 대화란 목적 지향적 행위다. 정보 교환하고 정황 파악하고 해결 도모키 위한. 반면 여자들은 소통하고 교감하고 싶어 대화한다. 대화의 목적이, 대화 그 자체다. 이런 남녀가 다툰다. 그럼 여자는 날 이해시키고 감정 전달하고 결국 위로받고자 대화 시도한다. 그러나 남자에게 분쟁 상황에서의 대화는, 시비를 가리는 수단이다. 여기서 침묵은 제 승부를 접겠단 거다. 섬세한 커뮤니케이션 능력 부족한 수컷의 투박한 투항. 무시가 아니라 차라리 존중. 오히려 입을 연다면, 그게 대결이다. 이게 그 침묵의 정체다.

다음, 불안. 연애란 본질적으로 불안한 관계다. 당연하다. 생물학적, 법적 구속 없다. 그 지속가능성이 오로지 불안정하고 불합리한 인간 감정에 좌우된다. 불안한 건 지극히 당연하다. 문제는 그 정도. 정도의 차이는 대개 두 가지 차원에서 발생한다. 먼저 남녀 차. 나쁜 짝으로 인한 피해는 생물학적으로도, 사회윤리적으로도 여자 쪽이 크다. 불리한 쪽이 더 불안하기 마련. 사랑 입증 요구가 통상 여자 쪽에서 더 빈번한 건 그런 연유다. 이 불균형, 개인 문제 아니다. 성정치의 문제다. 이건 성 역학이 변화해 가며 해소되어 간다. 여기까진 당신 잘못 아니다.

문제는 두번째 요인이다. 만약 사랑이 의심스럽고 요구가 벅차 괴로운 거라면, 그건 연애 문제요 상대 문제다. 그러나 당신은 안다 했다. 상대가 날 사랑한단 걸. 상대는 사랑 이외에 요구치 않는다는 걸. 그런데도 비참하다. 이걸 연애 스타일이나 성정의 차라 오인하기도 한다. 아니다. 그런 거라면 상대 사랑을 아는 순간 자기비하까진 않는다. 이건 당신 이기심이 과한 게 아니라 당신 자존감이 왜소한 거다. 상대가 아니라 당신 문제란 소리다. 그럼 자존감은? 그 이야기는 그것대로 따로 하자. 오늘 짚을 건, 아무리 상대 닦달해봐야 사태 해결에 아무 도움도 안 된다는 거. 자존감은 상대가 만들어주는 게 아니니까. 하여 이런 유의 갈등에 가장 먼저 짚을 건 그것이 내 문제인가 아니면 상대 문제인가 하는 거다. 그게 출발점이다.


2. 32세 남자입니다. 사업도 몇 개 하고 벌이도 좋고 공부도 잘했는데, 삶을 함께할 배우자가 없군요. 그렇다고 무턱대고 아무랑 결혼하기는 싫습니다. 저에게 사랑의 위대함에 대해 일깨워 주세요.

다소 극적인 사례이긴 하나 이 고민 역시 결혼과 결부된 사랑에 대한, 매우 흔한, 본질적 오해를 담고 있다. 무슨 오해냐. 이 질문을 다른 영역어로 번역하면 이렇다. “밥을 함부로 먹을 순 없잖아요. 포만감의 위대함을 알려주세요. 밥 먹는 이유를 느끼고 싶어요.” 번역해 놓고 보면 바보 질문이다. 사랑이란 그것이 위대하거나 해야만 하는 것이거나 때가 되어서 하는 게 아니라, 도저히 하지 않을 도리가 없어 하는 거다. 죽을 것 같아서. 밥처럼. 그럼 왜 수많은 이들이 이게 바보 질문인 줄 모르나.

이 질문의 구조는 이렇다. 아무랑 결혼 못하겠으니 사랑의 위대함을 깨닫게 해 달라. 이건 결혼을 해야겠는데 그 이유가 필요하다는 식의 논리 전개다. 결혼이란 제도를 상수로 우선 전제한다. 대부분의 관련 오해는 이 지점에서 비롯된다. 결혼을 해야만 하는데, 사랑하는 사람과 해야 한다는. 아니다. 순서도, 내용도 아니다. 사랑은 하지 않을 수 없어 하는 것이고, 결혼은 때로 필요하면 이용할 수도 있는 제도다. 거의 모든 관련 갈등의 실마리는 바로 이 인식의 전환으로부터 풀린다. 그게 출발점이다.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

김어준 딴지 종신총수
PS - 섭섭하니 몇 줄 더. 각하의 가족동반 해외순방에 청와대는 자비 부담이라 괜찮단다. 그래? 그게 그런 거야. 그럼 나도 비용만 대면 F16으로 휴가 가고 경찰차로 출퇴근하고 소방차로 캠핑 가도 되는 거냐. 어떻게, 공동구매 한번 해봐? 웃기고들 있어 진짜.

김어준 딴지 종신총수 / 고민 상담은 go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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