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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5.06 21:12 수정 : 2009.05.11 01:44

“김어준·임경선씨 만나서 이야기합시다” 20대 남자셋 여자셋과 나눈 ‘사랑 그리고 일’

[매거진 esc 100호 특집]
“김어준·임경선씨 만나서 이야기합시다” 20대 남자셋 여자셋과 나눈 ‘사랑 그리고 일’

‘그까이꺼 아나토미’의 김어준씨와 ‘이기적인 상담실’의 임경선씨가 독자들과 만났다. 2주 동안 고민 메일(gomin@hani.co.kr)로 신청한 90여명의 20대 청춘 남녀 가운데 남자 셋, 여자 셋이 당첨돼 5월1일 저녁 한겨레신문사 회의실에 모였다. 이날의 상담 주제는 20대의 사랑과 일. 가벼운 연애 이야기로 시작하자고 터진 대화의 봇물이 2시간 반을 훌쩍 넘었다. 개개인의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기엔 턱없이 모자라는 시간이었지만 ‘무릎팍 도사’보다 즐겁고 명쾌했던 이야기들을 지상 중계한다.

어준: 유사한 고민들이 묶이네. 남자 둘은 고백을 못하는 거 아냐?

수빈: 전 할 거예요.

어준: 그럼 가.(좌중 폭소)

수빈: 유학준비중인 선배인데 가기 전에 내 마음을 알리고 싶어요.

도로에 나서지 않고 운전을 어떻게 배워

어준: 어떻게? 연애는 해봤고?

수빈: 열일곱살 때, 스물일곱살 여자랑.(일동 탄성)

어준: 그건 키워진 거잖아.(웃음) 얼마나 사귀고 왜 헤어졌는데?

수빈: 1년 정도. 그냥 남들처럼 연애했는데 아무래도 사정상 공개할 수 있는 연애도 아니었고, 그분은 집에서 결혼에 대한 압박도 있었고..

어준: 근데 여긴 왜 왔나?

수빈: 자신 있어서라기보다 (선배에게) 지금 고백 못하면 말할 기회 없을 거 같아서 시도하려고 노력중이에요.

어준: 그렇구나. 그럼 자기는 왜 고백을 못하나? 소설가 될 양반이.

원호: 군대 가기 전에 캠퍼스 커플이었는데 헤어지고 굉장히 안 좋았어요. 다른 인간관계들까지 다 틀어져서. 군대 가자마자 다른 후배가 여친에게 고백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런 사건들이 생기면서 안 좋은 소문들도 들리고, 아무튼 제대해 보니까 제가 나쁜 놈이 돼 있더라고요.

경선: 그 사건이 고백 못하는 거와 어떻게 연결되는 거 같아요?

원호: 성당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같은 소속이잖아요. 고백해서 잘되면 좋기도 하지만 끝을 생각하니까, 그러니까 사귀다 헤어졌을 때를 생각하면 후폭풍이 두렵고, 또 고백했다가 차이는 것도 겁나고.

경선: 끝이 없다, 이별 안한다는 건 결혼한다는 얘기거든. 그런데 아직 이십대 초반인데 그 여자 하나만 사귄다는 것도 무섭지 않나?

원호: 그건 두렵지 않아요. 그만큼 좋아하니까.

경선: 지지고 볶고 아프고 그런 것도 사랑의 일부잖아. 그런게 진짜 감정, 진짜 연애 의미 아닐까?

어준: 잘되어도 두렵다고 했잖아. 이별, 생각하면. 그럼 똥으로 나올 건데 밥은 왜 먹나. 죽는데 왜 살아. 말이 되는 것 같지만 안 되는 이야기라고. 결국 똥 쌀 거니까 먹지 않겠다는 이야긴데 그럼 죽는다. 고백해.

비함: 이해는 돼요. 몇 명이 될지 모르겠지만 친분 있었던 사람들이 내가 이랬고 저랬고 구구절절한 이야기들을 하면 피곤하고 속상할 거 같아요.

열심히 들이대라, 판타지를 버려라

어준: 남자들은 거절 공포가 있어요. 거절당하면 단순히 ‘나 같은 스타일을 싫어하는구나’가 아니고 ‘수컷으로서 생물학적 존재가치를 부정당했다’, 직역하면 ‘내 꼬추는 가치 없다’, 그렇게 본능적으로 받아들인다고. 그게 무서워 아예 회피해 버리는 경우가 많지. 그 관점에서 여자들은 승낙 공포가 있지. 괜찮은 놈 아닌데 잘못 승낙하면 어쩌나.

경선: 그런 남자들은 여자의 거절 아니고라도 근본적으로 자기 꼬추에 자신감 없는 거 아닐까? 승낙해놓고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합리화하는 여자들도 참 많지. 원호는 특히나 앞으로 소설을 쓰고 싶다면 고백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해봐야 할걸? 즉 실패를 두려워한다면 소설 쓰기에 필요한 다양한 감정을 느낄 일도 없지.

어준: 자신도 수습 못하면서 고백은 사치 아니냐. 그런 멘트도 썼던데.

원호: 좋아하는 여자랑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고 선물도 해주고 싶고 그렇잖아요.

어준: 그 태도 아주 잘 봐주면 예의인데, 내가 준비가 안 됐다는 거 아냐, 하지만 사실은 무서운 거거든. 연애는 삶에서 교통사고 같은 건데, 무서워서 아예 도로에 나서질 않는 거지.(웃음) 평생 장롱 면허야. 완벽한 드라이버가 먼저 되는 게 예의라는 건데. 도로에 나서봐야 운전을 배우지.

경선: 연애할 때 버려야 하는 게 자의식이고 이걸 젊을 때 빨리 버리는 연습 안하면 나중에 나이 들어서 걷잡을 수가 없어요. 불안장애 고치는 방법을 보면 불안을 주는 현장이나 행동을 직면해서 하는 것밖엔 실질적 방법이 없거든. 연애도 마찬가지야. 특히 요즘 여자들은 남자들이 먼저 들이대지 않는 것에 불만 많거든.

연애기간 짧다고 비정상? 노!

어준: 가부장사회에선 남자들이 거절당해도 수컷 자존감이 근본적 상처를 입는 건 아니었어. 어쨌든 상대적 권력이 수컷에게 있었으니까. 그렇게 수십만년 지내오다 갑자기 권력을 잃기 시작했는데, 수컷들 연애 습성의 진화 속도가 그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니 두려워서 움츠러드는 거지.

경선: 남자들은 그러고 있지, 여자들은 여자대로 대놓고 들이대는 거에 대한 거부감 있을까 주저하니까 맞닥뜨려지지가 않는 거야. 조금이라도 둘 다 앞으로 나와야 될 필요가 있는 거 같아.

형석: 주변을 보면 나이 들어가면서 상처를 겁먹기보다 귀찮아해요. 어릴 때는 누군가를 너무 좋아해서 미칠 거 같고 그랬는데 나이 들면서 얘기 통하고 정서적 공감대를 만들면서 연애를 하다 보니까 거절당하면 뭐, 말지 이렇게 된다고 할까?

경선: 프라이드를 보호하려는 건가, 아님 귀찮은 건가?

형석: 둘 다요. 이제 저도 자칫하면 결혼할 수 있는 나이가 됐는데. 애라도 들어서면.(좌중 폭소) 동생은 조만간 결혼하는데 형은 변변히 1년 이상 연애해본 적도 없고 아는 여자만 늘어나고 있는 거예요.

독자대담을 진행하는 컬럼니스트 임경선씨
경선: 연애 오래 못하는 건 전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형석: 저는 맘에 드는 여자 만나면 적극적으로 들이대요. 길 가다가도 맘에 드는 여자 만나면 연락처 묻고. 교회에 안 다니지만 반한 여자가 교회에 다니면 꼬시려고 우연을 가장해서 교회도 나가고. 그런데 고백하고 한 달 정도 자주 만나면서 불붙고 나면 금방 익숙해지고 식어버리는 거죠. 누군가를 오래 좋아하고 뜨거운 감정이나 떨림을 오래 가지고 싶은데.

경선: 설레는 감정 말고는 다른 연애의 좋은 감정을 느껴본 적은 없어요?

형석: 편한 것도 좋은데 편해지면 또 아무리 예쁜 여친이라고 해도 덜 예뻐지잖아요. 그런 생각이 드는 게 또 죄의식이 느껴지고. 결혼한 사람들한테 왜 바람피우냐, 여자 나오는 술집 가냐 물어보는데 전 이런 게 너무 싫거든요. 그런데 열정이 빨리 식는 저를 보면 결혼해서 한 여자에게만 충실할 수 있을까 불안하기도 해요.

열심히 들이대라, 판타지를 버려라

그러다 ‘철벽녀’ 소리 듣는다

어준: 자기 케이스는 문제없다. 본인 죄의식은 연애는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는 세간의 매뉴얼에 안 맞아 생기는 건데. 연애 기간이 얼마냐로 정상 비정상 나눌 건 아니지. 결국 자기 생겨먹은 대로 사는 거야. 자기가 달아오르고 식는 인터벌이 남들보다 짧다 해서 누가 욕한다면 욕먹어. 근데 죄책감까지 가질 필요는 없다.

경선: 요즘 애들은 콘티를 짜서 ‘내 연애는 어떻게 시작해서 이렇게 가야 돼’, 감독을 하고 안 되면 짜증을 내.

혜현: 남자들이 용기가 없는 거 같기도 해요. 태도는 미온적으로 바뀌었지만 정작 내가 만날 여자에 대한 이상형 설정은 옛날과 똑같은 걸 떠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여자라고 전부 다 여성스럽고, 예쁘고, 착하면서 캔디 같고 이렇진 않은데 똑같이 그런 걸 원하고.

어준: 사실 외모지상주의가 아니었던 시대는 없거든. 외모로 사람 일차적으로 판단하는 건 본성이야. 그건 영원할 거라고. 문제는 그 이외에 쳐주는 가치가 있느냐, 그게 문제 아니겠는가.

혜현: 외모를 중시하는 것도 괜찮은데 기준이 왜 다 똑같은가. 우리나라는 특히 그런 거 같아요.

어준: 우리 사회 남성의 평균적 미의식에 대한 이야기인가?

경선: 회사가 보수적이에요?

혜현: 회사뿐 아니라 학교 다닐 때부터 활동 많이 하고 나름대로 넓은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사람들을 만나도 생각이 비슷한 거 같아요.

어준: 우리나라 남자들이 평균적으로 촌스럽다, 천편일률적이다. 뭐 어느 정도 이해는 가는데 안 그런 사람도 있잖아.

혜현: 일상적 고민을 나누기도 힘들지만 스포츠에도 관심 많고 야구장도 많이 가거든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맞는 사람을 못 만났어요. 길게 가봐야 석 달? 나랑 맞는 사람이 있기나 한가 싶기도 하고.

어준: 그런 사람 있지. 아직 못 만났을 뿐이지. 연애 많이 해야겠네.

경선: 남자들 다 똑같아. 이런 걸 거부할 거야 처음부터 생각하면 점점 더 방어벽을 만들어서 그렇지 않은 남자를 만나도 스스로 방어벽을 칠 수 있거든. 요즘 철벽녀 유행이잖아. 그런데 수동적인 성역할이라는 건 성적인 욕구 같은 거 말하는 건가?

혜현: 어느 정도 솔직해질 단계가 돼서 말해보면 남자들은 다 여자가 적극적인 것 싫어해,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경선: 그렇게 말하는 애들은 스스로 자신이 없어서 그런 거야.

어준: 안 그런 사람도 많아.

혜현: 안 그런 사람을 어디서 만나야 될까요?

경선: 기존의 울타리를 벗어나서 새로운 모집단을 찾아봐야지.

혜현: 회사에서는 일만 하고 그런 기대도 안 하는데 밖에서 이 사람은 전향적일 거 같다는 생각으로 만났는데 의외로 비슷하더라고요. 진짜 안 그런 사람 한 사람만 만나면 이런 생각 사라질 거 같은데 그런 기회가 없어요.

경선: 그런 습성이 몸에 배면 3초 만에 저런 놈이다 단정짓고 남자에 대해서 꿈을 안 갖겠다는 건데 그러면 사생활이 슬퍼져. 요즘 애들 보면 연애하기도 힘들고 무슨 즐거움으로 사생활 보내나 싶어. 일은 스토익하게 하고 연애는 리버럴하게 해야 하는데 가만 보면 점점 거꾸로야. 일은 대충 하고 연애는 매뉴얼로, 머리로 하려고 하고. 반대가 된 거 같아.

비함: 연애에 몰두하는 시간과 에너지 때문에 피곤한 거 생각하면 그냥 회사만, 이렇게 되는 면도 있고. 안 그래도 며칠 전에 철벽녀 이야기 들었어요. 마음 여미는 게 습관이 된 거 같아요.

어준: 첫 연애는 몇 년 그리고 몇 번이나?

비함: 4, 5년 정도 하다가 차였어요. 그 친구 말로는 내가 감당하기에는 넌 너무 큰 아이야.(일동 야유) <건투를 빈다>에도 나온, 안 될 거 같으니까 꼬리 던지고 도망가는 파트너에 너무 공감한 거죠. 그 이후 시도는 여러 번 했는데 잘된 건 한 번도 없었어요. 한 1년 만났던 관계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서 연애로 치고 싶지도 않고.

어준: 총 두 번? 왜 횟수를 묻냐면 결국 겪은 만큼만 알거든. 모집단 숫자가 너무 작다. 일단 횟수를 늘려야겠다.

20대에는 사랑과 일이 큰 고민거리다. 사진 왼쪽부터 김형석·최수빈·박혜현씨.

비법이 없어, 무조건 들이대

비함: 아까 나온 이야기처럼 주변에 연애하고 싶은 사람도 없고. 연애할 대상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야겠다 그래도 어디로 가냐고.

경선: 내 주변에 29살부터 36살까지 처자들 딱 비함씨 같은 여자들 진짜 많거든. 다 어떡하니?

비함: 답이 없어요. 요새 풍속이 바뀐 게 우리 회사 여자 후배가 요새는 소개팅 안 하고 다시 미팅을 한다는 거야. 이해는 가요. 소개팅 갔다가 마음에 안 들면 그냥 꽝인데 미팅하면 그날 적어도 즐겁게 놀 수는 있잖아. 이게 뭐냐면 하나를 얻기보다 잃지 말아야겠다는 리스크 관리 때문에 사람 만날 수가 없는 거야. 나도 그렇고.

어준: 연애에는 비법이 없다. 무조건 들이대는 거다.

경선: 200프로 동감.

비함: 하루 일과를 보면 총각이 한 명도 없고 다 아줌마예요. 주변을 봐도 아줌마, 처녀 아니면 유부남. 그래서 대학원에 간 건데 여기는 또 전부 다 유부남이야.(웃음)

어준: 유부남이 어때서? 그 정도 흠 없는 남자가 어디 있다고.(웃음) 아무튼 시도가 충분치 않았다 본다.

비함: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 내가 생각 못한 걸 가지고 있지는 않을까. 그런 태도는 준비됐다고 생각하는데 타깃이 없었을 뿐.

어준: 머리로만 준비하고 있는 거지. 액션이 필요하다. 끊임없이 시도해보고 아니면? 끝내면 되지.

경선: 여자들은 특이한 게 왜 괜찮은 남자 없을까 하는데 그러는 너는 그렇게 괜찮냐 생각 든다니까.(웃음)

비함: 그래 나도 별건 없지 그런 생각도 들죠.

경선: 그러니까 악순환이지. 만날 남자가 없다는 건 스스로를 부정하는 이야기이기도 해. 나는 매력 없다는 것과 똑같은 이야기야. 자신을 긍정하다 보면 자비의 마음으로 연애를 하게 돼 있어. 사랑을 나눠주기 위해서.(웃음) 자뻑을 해야지.

문정: 짚신도 짝이 있다는데 요새 고민하는 게 구두가 짚신은 만날 수 있나 이런 거예요. 진짜 맞는 사람을 못 만날 거 같아요. 친구들과 이야기해도 우린 안 되나 봐. 다 이러고 있고.

어준: 왜 안 돼?

문정: 동아리 나가고, 학원 다니다 보면 가끔 누가 이성으로 다가오는데 징그러워요. 동아리 선배나 동기들이 갑자기 잘해주고 그러면 의심스럽고.

어준: 그전 연애는 어떻게 했는데?

문정: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연애가 아니었던 거 같아요. 그저 사귄다는 말이 좋아서 유아적인 감정으로 만났던 거 같고. 팬심 같은 것만 있어요. 멀리서 보고 잘생겼다, 몸 좋다 이러면서 쳐다보는 건 좋지만 다가오면 감당이 안 되고.

어준: 스킨십이 싫은 거야?

문정: 사귀자고 했는데 그 다음날 손잡으려고 하면 싫어지고.

어준: 그럼 연애를 한 게 아니네. 한 번도 만져보고 싶은 남자가 없었나?

문정: 원빈 보면 만지고 싶죠.(일동 폭소)

경선: 인간이 싫은 거네.

어준: 이건 일종의 지체다. 연예인 바라보듯 남자를 보는 건데. 남녀가 끌리는 건 배우는 게 아니고 타고나는 거야. 남자가 싫다면 후천적인 거지.

문정: 이번에 핀란드로 교환학생 가는데 스페인 계열로 만나보려고요. (웃음) 자유로운 경험을 하고 그러면 마음도 열리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형석: 내가 좋아하는 일과 돈을 벌고 싶은 생각 사이에서 계속 갈등하고 있어요. 대단하게 성공을 한다거나 큰돈을 벌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보다 더 벌었으면 하는 욕심이 있는 반면 더 재밌는 일을 했으면 하는 욕망도 있고.

열심히 들이대라, 판타지를 버려라

자아실현 대 돈 버는 일

경선: 보통 보면, 재미나 자아실현을 위한 일은 돈 못 버는 일이고, 힘들고 지루한 일은 안정되게 돈 버는 일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는 거 같아. 꼭 그렇지도 않거든. 대개 자신의 일에 대해 불만이 있지만 겁먹어서 상황을 변화시키지 못할 때 그렇게 ‘일장일단’ 식으로 표현하더라. 재밌으면서 돈 잘 벌 수도 있어, 실은. 아무에게나 그런 능력과 운이 따르지 않을 뿐이지.

독자 대담에 참여한 김어준씨
어준: 나는 결국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해야 한다고 봐. 좋아하는 일 하면 돈을 못 벌 거다. 처음에는 당연하지. 좋아만 할 뿐 자신도 준비가 안 되어 있거든. 돈이 이미 벌리고 있는 일들은 남들이 그렇게 세팅해 놓은 일들뿐이거든. 하지만 그렇게 남들이 세팅해 둔 구조에 고용되어 돈을 잘 버는 사람들도 사실은 아주 드물어. 다들 그냥 사는 거지. 정말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은 결국 자기가 좋아서 그 일을 하다가 돈까지 벌게 된 사람들이지. 그러니까 돈의 관점에서도, 자기 만족도의 관점에서도 결국은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맞다고 봐. 다만 내가 길을 처음부터 만들어야 하니까. 무섭지. 그래서 그리로 가지 말아야 할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거야. 핑계로.

형석: 음악을 좋아하는데 직업적으로 할 생각은 없어요. 하는 친구들 보면 너무 힘드니까. 현실적으로 봐서 그중에서 성공하는 사람은 소수잖아요.

열심히 들이대라, 판타지를 버려라

어준: 그럼 성공하는 사람이 다수인 분야도 있나? 없지. 예전에 자기 분야에서 나름 일가를 이룬 전세계 각 문화권의 40대들을 설문조사한 걸 본 적 있는데. 공통적인 게 지금 하는 일과 아무 상관도 없는 일들을 20~30대에 했더란 거야. 내가 40대에 어떤 일을 해야지 하고 20~30대를 준비한 게 아니라, 그때그때의 욕망과 호기심과 에너지를 따라가 보니 30대 중반쯤 되어서는 자신이 뭘 잘하는지, 뭘 좋아하는지 알게 되고 그리고 그제야 40대에 하고 있는 그 길로 들어선 사람들이 많더란 거지. 20대에 특히 진로 고민 많이 하는데 난 그때그때 하고 싶은 건 다 덤벼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어차피 그 나이에는 자기가 뭘 잘하는지도 몰라요. 그때까지 대학입시 준비한 거 말고 한 게 없잖아.

경선: 우리나라 같은 교육 환경에서 내가 뭘 잘하고 좋아하는지 알 수 있으려면 최소 20대 후반은 되어야 힌트가 조금 생기는 것 같아.

어준: 그래서 닥치는 대로 덤벼보라는 거지. 그래야 그나마 자신이 원하는 걸 찾을 확률도 높고 그렇게 즐겁게 해야 에너지도 나온다.

경선: 하지만 잘하는 걸 해야 하나, 좋아하는 걸 해야 하나, 고민할 때 함정도 있어. 무조건 ‘좋아하는 걸 해야 한다’는 것도 일종의 강박일 수 있거든. 가령 좋아하는 게 막막하고 답답한 상태라면 잘하는 걸 제대로 해보는 것도 괜찮은 거 같아요. 잘하는 걸 좋아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걸 ‘타협’이라고 하찮게 여기는 것도 옳지 않아. 그러고 보면 참 양극단의 패턴이야. 내 꿈을 쫓아가야 제대로 된 인간인 것처럼 당위성에 쫓기면서 한편으로는 공무원 시험에 목숨 걸거든. 둘 다 강박이자 어쩌면 ‘타인의 목소리’에 휘둘리는 거지.

어준: 안정이 행복일 수도 있긴 한데 적어도 20대에 공무원, 이건 아니라고 봐.(웃음) 공무원이 나쁘다는 게 아니고 평생 안정적 직업이라며 머리에 떠올리는 게 겨우 공무원, 안정과 꿈, 이런 식으로 이분하는 거, 진짜 말도 안 되는 도식이야.

열심히 들이대라, 판타지를 버려라

공무원이 안정적이라는 환상을 버려

경선: 왜 중간이 없나? 대안의 삶이 너무 없는 거야. 공무원이라고 안정적이라는 것, 아티스트가 꿈에 근접한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판타지야.

어준: 연애도 직업도 결국 판타지를 깨야 제대로 할 수 있다. 머리로만 그리지 말고 직접 겪어야 해. 삶은 겪는 만큼만, 딱 그만큼만 아는 거거든. 나머지는 다 아는 척이야.

경선: 판타지를 깨는 데 연애든 일이든 가장 중요한 건 ‘자발성’인 것 같아. 스스로의 힘으로 선택한 일과 사랑이면 성공하든 실패하든 늘 배우며 성장하니까.

참가자 프로필

정원호(24)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두려움 때문에 고백하지 못하고 있는 대학생. 취직 때문에 컴퓨터 전공을 선택했지만 제대 후 본래의 꿈이었던 소설가 준비중. 그러나 ‘배고픈 직업’을 선택해도 될까, 성공할 수 있을까, 여전히 진로는 안갯속.


이비함(29)

수의사 출신의 제약회사 근무 5년차이면서 성공회대 엔지오대학원을 다니는 부지런한 직장인. 연애를 하고 싶지만 연애보다 재미있는 것들이 더 먼저 눈에 띄는데다 왜 주변에는 매력남은 얼씬도 안 하고 싱글녀들만 자꾸 모여드는 건지.


김형석(29)

매력녀를 발견하면 바로 달려가 연애를 걸 정도로 적극적인 성격이지만 금방 달아올랐다가 빨리 식는 성격 탓에 단기 연애만 수백번. 옷을 좋아해 의류업을 선택했지만 주어진 일을 해야 하는 현실과 자아실현이라는 이상 사이에서 갈등중.


강문정(21)

교환학생을 준비하는 경영학과 대학생. 동아리, 학생회 활동 등을 열심히 하는 적극적인 성격이지만 몇 번의 연애 비스무리했던 게 안 좋게 끝난 뒤 다가오는 남자들이 의심스럽기만 하다. 눈이 너무 높은 건지, 성격이 문제인지 해결책을 찾고 싶다.


최수빈(19)

올해 대학에 입학한 영화감독 지망생 새내기. 여자친구와 사귀어 캠퍼스를 같이 거니는 꿈이 있었지만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꽂히는 사람이 생기질 않는 게 답답한 실정. 그런데 상담 신청을 하고 나서 갑자기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박혜현(27)

남성 중심의 집단 문화가 힘든 3년차 직장인. 연애하면서 열려 있다고 생각했던 남자들조차도 결국에는 여성스러움이라는 고정관념에 묶여 있다는 데 좌절. 외모지상주의와 수동적인 성역할을 강요받는 한국 여성으로 살아가는 건 너무 어려워!

정리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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